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Jan 16. 2022

머리를 자르고

한 걸음씩

 작은애는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다.

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내가 '단소미' (단발+소미)라고 부르던 아가가, 이제는 어엿한 '장소미'가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생길 나이라 그런가, 엄마가 앞머리를 잘라 주겠다고 해도 잘 듣지 않더라.

그래서 계속해서 장소미로 지내고 있었다.


 엄마는 길게 늘어선 딸아이의 앞머리를 두고 볼 수가 없었나 보다. 결국 강한 의지를 갖고, 자르면 아이 좋아하는 걸 사러 가진다. 둘째는 싫다고 하지만, 어쩔 티비. 별도리는 없다. 이윽고 행동의 시간.

 엄마의 긴장한 가위와, 아이가 감은 눈에서, 적막함이 감돈다. 드디어 첫 컷.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지만, 다소 들쑥날쑥하게 잘렸다. 결국 싫어하는 아이를 다시 달래가며, 겨우겨우 두어 번 컷을 추가한 이후에야, 아이의 앞머리가 다소 짧지만 수평이 가지런히 맞혔다. 막상 자르기 전엔 싫어하던 아이도, 자른 이후에는 앞머리가 눈을 찔르지 않아 좋은 눈치다. 이렇게 힘들던 둘째 딸 앞머리 컷이 끝이 났다.

첫 컷이 너무 깊게 들어갔다. 아이의 리얼한 표정이 압권

 생각해 보면,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가 집에서 잘라주셨던 거 같다. 요새 기준으로는 많이 늦은 편이긴 한데, 조금 유추해 보건대 어머니께서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미용사' 역할도 수행을 하셨어야 되지 싶었다. 왜 초등학교 때 까지냐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는 두발 규정이 있던 학교에 가야 했기에, 가위질로만은 기준을 맞출 수 없고 이발기를 대서 전문으로 잘라주는 곳을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중학생이 된 나의 머리를 어디서 자를지 고민하시다가, 옆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사회복지원에 커트 집을 데려가셨다. 그곳의 첫인상은 세상에, 줄이 끝도 없이 복도를 휘감고 있었다.

"엄마, 그냥 다른데 가면 안돼?"

"안돼, 여기서 기다렸다가 깎고 가자"

그 당시 휴대폰이 있을 리도 만무하며, 정말 책이라도 가져올걸 싶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1시간쯤 흘렀을까, 내 차례가 되었고, 컷은 5분 만에 끝이 났다. 솔직히 내 인물평을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만족스러워하시는 눈치. 나중에 알고 보니 컷 가격이 정말 이게 남나 싶을 정도로 저렴했었다...


 그렇게 첫 한 번의 컷은 어머니와 함께 두려움과 지루함을 함께 이겨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터는 머리가 대충 길어지거나, 선도부 형님들이 자르라고 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잘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머리 자르는 게 별거 아니지만, 집을 떠나 다른 모르는 공간에 홀로 앉아,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희망 머리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거 같다.


 첫째는 그래도 벌써 미용실 가서 앉아 염색도 해보고, 파마도 해봤단다. 아빠가 어릴 적 중학생 때야 비로소 행했던 것을 조금 빨리 해본 것에 기특함과 대견함을 느낀다. 우리 둘째도, 아직은 부끄럽고 쑥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미용실도 가고,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넓혀가면서, 부모로 부터 서서히 독립해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하루빨리 둘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마치 내가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이 아이들이 모두 자라나서 대학생이 될 무렵이면,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 혹은 다른 회사에서라도 조금 더 버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겠지.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는 거 같다. 어른이란 키가 크고 나이를 먹어 어른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과 비슷해질 무렵,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거 같다.

홀로 갇힌 세상을, 혼자 나오긴 어렵다. 이럴 때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Be uncomfortabl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