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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Jan 18. 2022

고마웠던 시간

나에게 힘이 되었던 시간들

"괜찮으신 거예요? 너무 힘이 들어 보이세요"

 작년이라는 말이 아직 입에 붙지 않는다. 2021년 9월, 회사 내 상담센터를 처음 찾았을 때, 상담사 A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내 기억에는 내가 말만 못 했지,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강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있음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옆에 기둥에 고개를 기대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나를 보며 분명 놀랐을 것이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어려웠었다. 

그간의 동료와의 갈등과 마찰을 찬찬히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마찰을 빚던 동료에게 했던 워딩의 의미와, 상대방이 이해한 잘못된 뜻. 업무 관련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피드백을 전혀 주지 않는 상사에 대한 이야기. 그걸 바탕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들까지. 상담은 매주 1회씩 진행되었고, 심리 상담이, 고된 업무와 사람 관계로 너무나도 힘든 와중에 누군가가 나의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세션이 정말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마치 예전 '본방 사수 방송'처럼 TV를 틀고 해당 방송만 하길 기다리며 광고 시작부터 몸이 닳아 있는 사람처럼, 약 1시간의 시간이 정말 소중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 줄 몰랐다.

사회로 나와 많은 책들을 읽으며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 하나는, '비밀은 배우자에게나 털어놔라'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친한 친구도, 그렇다고 적도 없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회사생활을 유지하고 싶었고, 그렇게 지내온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던 상황이었던 거 같다. 내 머릿속에서는 나에게 '위험', '경고'등의 붉은색 시그널을 계속 보내왔지만,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출근해서는 '사람 좋은 척' 웃어야만 했고, 퇴근해서는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 보일까 봐 숨겨야만 했다.

 이 와중에 상담사 A에게는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비밀'들을 이야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담 횟수가 쌓여갔고, 아마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근의 내 근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담사 A의 노력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며 내가 가지고 있던 분노와 화는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감소분도 있을 것이고, 상대방과의 오해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도 있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눈에 띄게 내 정신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호전될 수 있던 것은 상담사 A와, 우리 가족들의 노력이 매우 컸다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어려움들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었고,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주셨다.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흘렀다. 오늘, 상담사 A와 만나는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미팅이 있었다. 나는 오늘을 '심리 스쿨 졸업 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난 9월부터, 1월까지 상담을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시고 도움이 되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A가 나에게 물었다.

"네,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훈수'예요, 상대방이, 저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제 이야기가 와전되어 일이 안 좋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내달 았습니다."

"그럼, 비슷한 경우가 왔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네, 저는 이런 경우가 올 때, 제 상사에게 이슈를 위임토록 하여, 권위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려고요."

A는 그 이후에도 심리상태를 조금 더 체크하더니,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공식적으로 상담 종료지만, 심리상태가 불안해지시거나, 하시면 저를 꼭 다시 찾아주세요"

"네, 정말 그간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A와의 짧다면 짧은, 길면 긴 5개월여의 상담이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상담은 마음이 연약한 사람들이나 한다고 스스로 낮게 평가해왔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겨내는 과정에 조력자가 있어야 조금은 수월하게 해처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상담사 A를 통해 배웠다.

  언젠가 다시 '입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도,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분명 누군가는 다시 나를 도와줄 것이라 믿으며.


지루한, 제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심에,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자, 드가자~!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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