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결혼을 치르고서도 끝까지 그녀에게 무관심했잖나!!”
주먹이 뺨을 강타했다. 분명 그 말뜻을 이해 못 해야 함에도 복에 받친 상대의 목소리가 어딘가 와닿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의 장례가 치러진 뒤에야 후회를 하고 앉아있었지. 안 그래? 처음부터 이건 다 꿈이었다고!! 그런 네가 감히 그녀와 행복한 결말에 닿을 것 같아?”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난 레이몬드 어투렛, 방금까지의 일들보다 눈앞의 상대가 눈에 익었다.
“필립..?”
내 오랜 친구, 아니 레이몬드 백작의 오랜 친구 필립과 그는 똑 닮아 있었다.
“오냐,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 봐? 필립이라, 그래 그게 진짜로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었나 보지? 넌 절대 그녀와 이어질 수 없어. 그녀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고”
그때였다. 새로 온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눈앞의 상대는 모든 짐을 떠 앉은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의 동생과 그녀의 약혼자를 결국 인정했으며 두 사람이 잘 살기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었다. 이그리트와 계약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당신은 절 막지 못할 겁니다”
“흠?”
“..... 왜냐하면 당신도 마지막에 우리 두 사람을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레이몬드 어투렛 백작의 또렷한 눈빛이 그를 일으켰다
뒤틀어져 버린 세계는 비틀린 전개에 발악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원작의 스토리를 이어가려 애쓰고 있었다. 원작의 스토리대로 이끌어 엔딩을 맺고 쉬는 것 세상에서 일을 하는 엑스트라마저도 그것을 원했다. 빨리 끝을 내는 것 그리고 쉬는 것. 그러나 저 두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지 비틀린 이야기의 끝을 알 수 없도록 망쳐놓고 있었다
세계는 또 한 번 돌고 돌아 두 사람의 모습은 전의 모습과 상황으로 돌아온다
필립은 비틀린 얼굴로 광대를 한껏 들어 올렸다.
“내가 여태껏 자네를 관찰해 왔는데 말이야. 자네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자네는 주인공이 아니니까. 그리고 세상은 주인공 편이니까. 봐, 자네는 아직까지 세상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잖아? 이만 포기해”
“착각하지 마시죠, 승패 여부는 제가 정하는 것이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은 자신을 주인공이라 단정 짓는 오만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쩌겠습니까? 비틀린 세계에선 주인공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난 말이야, 네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먼저 이곳을 경험했지. 애써 진실을 알아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어, 왠지 아나? 터무니없이 허무맹랑하기 때문이지. 그래 그곳에 희망이라든가 기회 따윈 없어. 난 수많은 레이몬드 백작을 경험했어, 그들의 결말은 늘 죽음뿐이었지. 결국 하나같이 내 손에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죽음을 선택했지. 그런데 넌 어딘가 달라, 왜 이렇게 진실에 집착하는 거지? 그게 뭐라고 굳은 눈을 하고 있냔 말이다!”
모든 진실이 또렷하게 전해져 왔다. 그제야 이곳까지 온 이유를 기억해 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겐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반드시 당신을 꺾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이그리트, 그는 어디 있죠?”
그러자 귓가에 바람이 훅 불어왔다. 속삭이는 음성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하고 붉은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내 이름은 이그리트, 계약을 이루어주러 왔다”
그는 전보다 더한 오 짝 하고 음습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넌..!!!”
“물론 이해해, 날 사칭한 가짜를 다들 진짜로 알고 있더군. 물론 그자는 내손으로 처리했지. 아, 설마 하니 모르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내가 진실을 알려주지. 그 자는 비겁하게 자신을 죽이지도 못하고 있던 놈이었지, 그런데다 날 사칭까지 하고 자네와 다른 이들을 이용하려 하기에 내가 홧김에 원하는 데로 해버렸어, 그래 그자가 미래에서 온 자네의 아들이었다지? 참 안타깝게 생각해 그 자만 아니었어도 자네의 가문이 저주받은 핏줄이라는 소문도 그 끔찍한 일들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물론 전부 사실이야. 샤를로트가 가짜를 보고 너로 착각했던 거 잊었어?”
“..!”
“그래 뭐라더라...”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레이몬드 어투렛 백작은 검을 던졌지만, 진짜 이그리트는 검을 손쉽게 막아냈다
“이 검에 찔린 사람도 있었지, 뭐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아까 내 말 중에 이상한 점이 있지 않았어? 그 가짜 후손이 네 가문을 그 꼴로 만들 이유가 뭐가 있겠어?”
“그래서?”
“넌 그 노인을 죽였지,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말이야, 그 마법사는 마법사 세계의 대마법사, 라이칸 오스퍼,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딱 한 명의 자식을 낳고는 마법사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 잠재적 마법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어린아이의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를 여기로 불러들인 거야. 그리고 그 마법사는 예언으로 이곳의 레이몬드 어투렛 자네에게 죽입니다 할 것을 알고 있었지. 그리하여 하루가 돌아가기 시작한 거야. 진짜 원작은 페트리시에 와 그녀의 아버지의 재회로 이어지니까. 그러나 수십 번씩 수만 번씩 돌아간 세계는 완전히 이내 비틀려버렸지. 조연이었던 미샤의 상상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진짜라고 인식된 거야, 그 실수는 현재를 실제처럼 만들어 버렸지”
“어투렛 백작 당신은 원작 소설에 입문하기 시작한 자네를 오염 돼버린 세상의 영향으로 진짜 등장인물이 되어버렸지.”
“전 소설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이 소설을 덮어버리고 나면 끔찍한 현실이 절 덮칠 테니까요,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도, 행복한 마지막을 가져다주지 못할 테니까요”
“.........”
“그녀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작은 추억 속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었죠. 그러나 당신 말을 들으니 혼란스럽군요. 이것이 제 과거가 맞긴 합니까?”
“물론, 여긴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들의 안식처지. 내가 경험한 레이몬드 백작은 저마다 다른 삶을 가졌어. 자네도 마찬가지이지”
“그거 다행이군요. 이제 당신과 검을 겨룰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 넌 나가려 해도 못 나가, 내 존재 때문이지, 세상에 필요한 모든 집념이 내게 있지. 그 집념은 너를 이 세계에 가둘 명분이 되니까 말이야! 이전에는 널 오래전 계약대로 처리하려고 했어. 이젠 생각이 달라졌지. 널 내 손으로 해치워야겠어!!”
이그리트는 거대한 흑염룡으로 변해, 아슬아슬 공격을 피하는 레이몬드 어투렛 백작에게 불을 뿜었다. 목표에 그대로 맞은 걸보고 이그리트는 그가 지금쯤 불에 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이몬드 어투렛 백작은 되려 그 뒤에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이그리트는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그러자 그는 외쳤다
“왜, 더욱 절망하지 않는 거지? 왜 그렇게 침착한 거야? 날 원하지 않아? 내 능력을 원하지 않느냐고!!”
“앞으로 이겨나갈 자신이 있으니까”
“어째서? 널 도와주던 조력자를, 가족을, 연인을 잃고서도 어째서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 것이지?”
“단지 내가, 나 스스로 현재를 극복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레이몬드 어투렛 백작은 필립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서히 소멸되고 있었다. 이그리트에게 영혼을 빼앗겼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이그리트가 외쳤다
"모두 날 무시했어. 날 쓸모없는 놈이라 비웃었지. 가족들은 날 포기한 지 오래였어. 그런데 이곳에서 모두 날 주목하잖아! 내 능력이 대단한 것처럼 굴잖아!! 난 그저......... 부탁이야 날 그곳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줘. 비교당하는 건 이젠 끔찍해"
"당신이 능력을 남발한 덕분에 이곳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어. 그러니 이젠 돌아가. 원래 있던 곳으로"
그때였다 이그리트의 몸이 붉게 치솟더니 몸이 갈가리 찢어졌다. 그의 이미 의식은 없었다
사라져 가는 필립이 입을 열었다.
"비틀린 세상은 싸움에서 진 패자를 가차 없이 죽여버려. 세상은 단지 승리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자네 말대로 승패는 남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번에야 말로 자네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가"
“언젠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지, 그대로 나이만 먹다간 평생 후회하고 말 거야.”
레이몬드 어투렛 백작은 현실에서 눈을 떴다. 그곳엔 이미 죽은 사람의 초상화가 널려 있었다. 그는 과거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했다.
"아울러 가... 라, 레이몬드 어투렛 씨.. 반년동안이나 쉬었네요? 그동안 무얼 했죠?"
"새 삶을 살 마음을 굳혔습니다."
"반년 동안이 나요?"
"이젠 일을 시작하려고 왔습니다"
[면접 최종 탈락 되셨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을 겁니다. 몇 번이고 도전하면 되니까요. 삶의 아무리 힘들어도 더는 회피하지 않을 겁니다. 세월은 빠르게 흐르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며 살고 싶진 않으니까요
분명 누군가는 제가 실패하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혹은 제게 적대적인 사람 또한 존재하겠죠. 그렇더라도 그들에게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행동을 부정할 순 있지만 그들의 삶마저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전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고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될 겁니다. 그래야만 현재를 더욱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마지막으로 힘겨운 하루를 이겨내고 있는 당신의 삶의 매일 같은 일상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마지막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