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사고는 갑작스례 다가오는 한파같이 세월 속에서 차고 무디게 흘러간다
서리가 눈꽃처럼 흩날리고
소복한 땅은 금이 간 듯 얼어붙어 있네
미끄러지듯 훅 불어오는 바람
찬 공기, 눈을 뜬 사내
새하얀 입김, 하얀 비가 내리는 이곳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상기된 뺨
시린 눈밭을 누구보다 산뜻하게 뛰어다니는
가벼운 걸음에 혀를 찔려, 동자삼 어르노니
남지 않으리
꽁꽁 언 발, 시린 손
남지 않으리
창백한 피부 하얗게 뜬눈
해저에 빠진다면 필시 이런 기분이리라
악을 쓰고 몸에 힘을 들이리, 되질 않으니
나부끼는 꽃잎이 날카롭게 베어
그게 눈인 줄도 모르고, 제 살을 파 먹다
심해 끝에서 손을 뻗고 다리를 꿈틀 어 허우적대는 그러나 제자리걸음뿐인
몸져누울 줄 밖에 모르는 그 한심한 몸뚱이를
그저 한없이 원망 겨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눈을 감는다
이내 땅이 되었나 나무가 되었다 눈밭이다
새하얀 솜털을 꼭꼭 껴입은 눈밭
질식할 것만 같은 공기를 불러와
움트는 새싹을 깨우고
펑펑 내리는 눈 틈에 숨어 버리는 차가운 바람
지나간 자리에 한 송이 꽃이 피니
봄이 오지 않는 그날에 다신 나지 않을 꽃이 피는
그런 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