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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봄의 전령사, 스노우드롭 이야기

“새로이 시작되는” Galanthus nivalis

by 활자정원


Galanthus nivalis

“새로이 시작되는”


‘그 어떤 승리의 야자수나 지혜의 나무, 영광의 월계수도 모진 바람에 흔들리는 창백한 줄기 위의 이 하얗고 연약한 꽃송이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으리’ 《정원가의 열두달》-카렐 차페크


‘시작’이라는 말을 어떤 식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꽤나 고민했지만 ‘Galanthus’가 이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를 위로하기 위해, 천사가 떨어지는 눈송이를 꽃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담긴 이 식물은 우리나라 말로는 설강화, 흔히 스노우드롭이라고 불린다.


바쁘게 세 개의 계절을 보내고 맞이한 겨울은 비로소 정원가들이 마음 편히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다. 그러다 시린 땅 위에 피어오른 갈란투스를 발견하는 날이면, 정원가의 바쁜 한 해가 시작되는 것. 또 어떨 땐 하얀 눈이 녹아 섭섭해진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찾아온 눈송이 같다고나 할까. 바스락거리는 흙을 뚫고 피어난 꽃을 볼 때면 기특한 마음으로 가득 찬다.




'순백의 스노드롭은 추운 계절에만 꽃을 피울 운명이다. 그래서 남은 한 해 동안 거의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 약간의 초록빛이 정교하게 더해진 하얀 꽃잎의 스노드롭은 나무나 연약해 보여서 아주 작은 숨결에도 사라질 것 같지만 사실 무척 강한 식물에 속한다.' 《덧없는 꽃의 삶》_ 31p


새 하얗고 풍성한 벌룬스커트를 입은 요정이 둥둥 떠오르 듯, 바람을 따라 꽃송이가 고개를 흔든다. 그 섬세한 움직임을 숨죽여 들여다보면 이내 작은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푸르름을 마음껏 펼칠 봄이 온다는 기대에 가득 찬 속삭임. 역시나 '희망'은 갈란투스와 떨어뜨릴 수 없는 꽃말이다.


희망은 눈앞에 커다랗게 떠오르지 않는다. 봄을 기다리며 온몸을 움츠린 채 외투를 감싸 안고 걸어가고 있을 때 자라나는 스노우드롭의 새싹을 마주치듯,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발견하는 것이다. 그 순간 이제부터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하루를 살게 된다.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꽃은 언제 피어날까? 온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차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스노우드롭의 개화는 희망을 심고 그 씨앗은 푸르른 올해를 만든다. 그것이 열매를 맺어 결실할 날까지, 스노우드롭이 내 안에 심은 씨앗을 기억하자, 내년이 되어 다시 얼굴을 볼 날에는 이젠 내가 고맙다는 말을 건넬 차례이니.



PLANT INFORMATION


식물계(Plantae)ㆍ피자식물문(Angiospermae)ㆍ외떡잎식물강(Monocots)

아스파라거스목(Asparagales)ㆍ수선화과(Amaryllidaceae)ㆍ설강화속(Galanthus)

G. nivalis

수선화과의 알뿌리 식물

국내 노지월동 가능한 여러해살이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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