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촉, 알림과 지시를 분리, 웃음과 대화
자율 육아를 넘어서 방관 육아까지
육아에 관련한 조언이 넘쳐나는 책들이 시중에 넘쳐난다.
물론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좋은 가치관과 좋은 결과, 사례가 가득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부모가 현실 부모와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 괴리감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육아 관련 책 저자들의 자녀들은 워낙 착하고,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잘하며,
저자가 워낙 교육과 말을 잘하기 때문일까?
물론 정말 그럴 수도 있고,
좋았던 사례만 모아놔서 그럴 듯 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주장하는 바의 결과물인 책과
다양한 상황에 처해있는 현실 부모의 갭은
결국 자율 육아의 본 궤도에 올라가는 ’과정‘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그 과정의 전제로 첫 번째는
실제 과정을 겪어야 하는 현실 부모에게 책은 쉬운 지침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에게 맞는 실천 방법을 한번 더 만들어야 하며,
하루아침에 자율적인 육아를 할 수 없음을
서서히 시간을 두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두 번째로 육아서라고 해서 자녀에 포커싱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자녀의 변화보다 부모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하는데 매일 똑같이 행동하고 말하며,
자녀가 변하기만을 기대하는 우를 범하곤 했다.
위 두 가지 전제를 두고
자율 육아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부모가 서로 의견을 나누어야 할 것은
첫째로 가장 큰 목적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자율 육아의 가장 큰 목적은
‘자녀와 부모의 행복’이다. 자녀만의 행복이 아닌 가족의 행복이다.
두 번째는 하나의 인격체로써의 존중이며 자신들만의 삶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은 자녀의 일이고 이것은 부모의 일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
스스로도 서로 간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보통 부모가 원하는 세부 목적이 나온다.
시간관념, 위생 관념,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기, 인내력, 인성, 공부 등이다.
우리는 우선 이렇게 큰 부채꼴 모양의 계층적 목적을 떠올리고 인지해야 한다.
계층적 목적이라고 한 이유는 첫 번째 큰 목적은 깨지 못하는 불변의 원칙 Principle이며
하위 작은 목적들은 이 원칙을 위배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세 번째 목적 중 하나인 시간관념을 주입하다가
자녀와 부모의 행복이 깨지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위생 관념을 강조하다가 그것은 자녀의 일이 아니라
부모의 해치워야 할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율에 맡기겠다는 큰 방향(전략)으로 육아방침을 정할 때 부모의 다짐과 방향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아이의 나이, 상황, 히스토리와 매일 겪는 경험에 맞는 '맥락'이 있고
어떤 방법으로 자율적인 아이를 만들겠다, 부모는 이렇게 변하겠다는 '전술'이 있어야 하고,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의 첫 째 딸의 맥락은 8살 갓 초등학생 입학생으로
친구/생활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가지고 있고,
승부욕과 소심함을 한 몸에 가지고 있으며,
밖에서는 조용하고 모범적이나 부모에게는 큰소리 내는 성격이었다.
화기애애했던 어린 시절의 가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7~8세가 되자 찬바람 쌩쌩 불고 항상 삐딱하게 얘기하는 것이 버릇이 될 것만 같았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눈물을 보이고 급기야는 말문을 닫아버리거나 건성으로 대답하고
무작정 싫다고 말하는 상황도 가끔 나타났다.
부모로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녀의 눈물이 나 감정이 격앙되는 것보다
대화가 단절되고 비아냥과 비웃음만 남는 마음 닫힘이다.
그 지경이 되기 전에 나부터 변하고 싶었다.
자율 육아의 방향이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첫 번째 목표인 부모와 자녀의 행복을 위한 방향 전환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우리 부부가 실천하고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엄마와 딸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면 처음에는 친절한 말투로 몇 시까지 뭘 하자라고
(아이가 한 귀로 흘리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시간 약속을 억지로 체결해 놓고
시간이 흐르면 조급해지는 것은 아이가 아니고 부모다.
시간이 지났다고 닦달하고 재촉하게 되고,
조금 지나면 부모의 언성이 높아지고,
그러다가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하지 마 가지 마 이럴 거면 약속은 왜 했어! 를 넘어서
아이도 빼액 소리를 지르며 알았어! 알았다고! 하는 상황까지 간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 아이가 잠들면 또 어찌나 미안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든지.
여하튼 위와 같이 극단을 달리는 부모들은 우선 며칠간만이라도
아래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지켜서 해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세부 목적은 대원칙을 거스를 수 없다.
첫 번째로 시작할 것은 ’재촉하지 않는다‘이다.
전쟁이라고 표현되는 아침 등교 시간에도,
부모의 자유시간과 밀당하는 저녁 취침 시간에도.
재촉이라 함은 지시다.
보통의 대화는 “8시 30분이 되었네. 40분에 출발할 테니 옷 입고 준비하렴“
이렇게 알림과 지시로 구성되어 있다.
재촉을 안 한다는 것은 시간만 대신해서 알려주고 지시는 따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알림도 따로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자율적인 아이가 되지 않을뿐더러
아이도 혼자 다 챙겨서 하려면 어렵다고 말했기 때문에 계도기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부모는 최선을 다해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시간을 알려주고,
말로도 네가 무엇을 언제까지 하겠다고 생각해서 얘기해 주면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얘기해두어야 한다. (조력자)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도 미리 짧으면 5일 길면 10일 정도
자율적인 연습을 진행하고 있으니 지각할 수 도 있다고 말해두는 편이 좋다.
졸지에 아침 준비 시간의 주도자가 되어버린 아이는
8시 40분에 출발하는 엄마 버스를 탑승(엄마가 데려다 주기) 하기 위해
읽고 싶은 책도 꾹 참고, 필요한 준비물이나 옷 등을 빠르게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지각도 했다. 지각을 한 당일 등굣길에서 아빠는 ’늦겠다 빨리 뛰자‘가 아니라
걸어가자. 선생님이 물으시면 아침에 갑자기 어제 읽던 책이 생각나서 읽고 오느라 늦었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자.
그리고 오늘 아침 준비시간은 어땠니? 소리 지르거나 뭘 하라고 계속 얘기하지 않고,
너 스스로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도 5분밖에 안 늦었는데, 행복했니? 앞으로도 이렇게 하고 싶니?
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아빠가 이거 저거 하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대신 내일은 다른 시간을 줄여서 학교에도 늦지 않아 보겠다고 스스로 깨달은 바를 얘기했다.
이처럼 조금 늦더라도 부모와 아이가 행복한 아침 시간을 보내면
세부 목적들은 스스로 채워지고 달성하게 된다.
두 번째 목적에 해당하는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아침에 등교를 준비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 자신의 일이고
아이가 그것이 왜 필요한지 인지를 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요청이 있을 때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 외의 할 일 목록, 우선순위 배치, 시간에 맞게 수행하기 등에 대해서는
아이가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좋다.
손을 씻어라, 숙제는 꼭 해야지, 지각하면 안 된다와 같은 말은
누구에게 필수인지도 없고, 그저 지시만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부모의 일이다..
마치 필수 To Do리스트를 아이가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손에 쥐고 체크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절대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보내기.
8살은 대화로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는 나이다.
뒤돌아보면 아침 준비시간은 매일 전쟁 같은 시간이기보다 서로 잠시 떨어짐을 아쉬워하고 학교, 회사 등 각자의 공간에서 힘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내일 아침에도
재촉하지 않기, 화내지 않기, 스스로 준비하기, 늦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대화로 다음번을 기약하기, 행복한 가족의 시간 만들기, 대안을 제시하기 등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자율적인 아이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