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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Apr 27. 2021

00. 여행편지

그 겨울, 네덜란드에서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

“엄마, 나 인턴 취소됐어 갑자기. 이제 뭐하지?”

“여행 가자 엄마랑. 계획 세워 봐.”

“어디 가고 싶은데? 얼마 동안? 언제?”

“네가 정해, 전부 다.”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여행은 원래 갈 수 있을 때 가버리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비행기부터 예매했어. 여행하기 좋은 비수기였기 때문에 어디든 가고 싶기도 했고, 이때 아니면 언제 엄마랑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엄마의 제안을 덥석 물었어. 숙소, 비행기, 여행 계획 등 예약부터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내가 잘한 거 맞겠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



  갑작스레 아빠를 홀로 두고 떠나려니 미안했는지 부쩍 애교가 많아진 엄마. 고속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엄마와 아빠가 어찌나 귀엽고 다정해 보이던지. 내가 친구들과 여행 가던 날 바래다주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아빠의 눈빛이 너무 슬퍼 보이는 거야. 괜히 내가 둘을 갈라놓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빠에게 미안했어. 솔직히 이전까지 내가 본 엄마 아빠의 다정한 모습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언제 이렇게 잉꼬부부가 되었는지.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 중반부터 얼마나 서로를 애틋하게 찾을지 예상치 못했어.  


  엄마는 공항 가는 길 내내 '엄마는 캐리어라고 생각해.'라며 짐꾼처럼 내 뒤를 따라왔어. 그 모습이 마치 수학여행 가는 학생 같았지. 떠나기 전날 밤, 여행가방을 몇 번이고 바꾸고 뒤집으면서 불필요한 짐을 최대한 줄였는데도 여전히 짐이 많았어. 무엇을 또 가방에서 빼야 하나 고민했지. 우리 그렇게 밤늦게까지 짐을 싸면서 겨울 여행은 참 번거롭다 생각했잖아.


경유지 핀란드에 랜딩하기 전 모습


  핀에어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어. 편안하게 영화를 보다가 졸리면 잠도 자고 했더니 아홉 시간이 금방 지나 경유지인 핀란드에 도착했어. 비행기만 타면 어릴 적 엄마, 아빠랑 여행 가던 때가 생각이 나. 엄마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비행기 창문까지 발을 뻗어 놓은 채 답답하다고 징징댔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아주 어릴 때였던 것 같아. 엄마는 아직도 내가 그때 그 애로 보이는지 자꾸만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라고 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어.


  이번 여행이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 보는 독립 여행이라고 했으면서 출발부터 애기로 보면 어떡해.


  알고 보니 나는 북유럽이 처음인데, 엄마는 두 번째였어. 비행기 창밖으로만 보이던 숲이 울창한 핀란드의 거리를 엄마는 걸어봤겠네. 핀란드를 경유한 건 좋은 선택이었어. 내가 휴게실에서 쉬는 동안 엄마는 공항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왔어. 나보다 북유럽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가게를 좀 더 돌아보고 싶던 눈치였지만 돌아올 때 한번 더 올 거라 생각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 비행기에 탑승했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첫날에 핀란드 공항에서 아빠에게 줄 양털 실내화를 샀어야 했어.' 하며 아쉬워하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야.


경유지에서 만난 알바 알토. 엄마는 그가 디자인한 그릇을, 나는 그의 의자를 좋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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