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숙소의 배신, 암스테르담
여행 첫날, 7시간의 시차 덕분에 우린 하루를 31시간으로 살았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유심카드를 사는 데 시간과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였을까, 갑자기 기차표를 끊는데 머리가 새하얘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우리 뒤로 기다리는 줄이 점점 길어지자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슬 맺히기 시작했고, 결국 뒷사람들에게 순서를 내주었지.
반나절 동안의 비행에 지쳐있을 엄마를 완벽하게 호텔로 짠 하고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허둥지둥 대는 나를 오히려 엄마가 다독여줬어. 그러면서 엄마는 나와 단 둘이 낯선 땅을 여행하는 과정 자체가 설레고 즐거운 거라고 말해줬지. 마침내 어렵게나마 기차표를 끊었고, 우리는 기차표 하나에 어린 아이들 처럼 기뻐하며 다시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향했어.
하지만 첫날의 악몽은 그게 끝이 아니었어. 첫 호텔에 도착했던 바로 그 순간이 여행 중 제일 당황스럽지 않았나 싶어. 15박 중에서 제일 비싼 방값을 내고 예약한 숙소였지. 체크인 하면서 잊고 있었던 도시세(city tax)를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예상치 못한 지출에 투덜대고 있을 때였어. 그런데, 어라? 우리 방이 반지하잖아!
번지르르한 로비와 대비되어 캐리어 하나 제대로 필 자리 없는 우리 방은 더욱 좁고 칙칙해 보였어. 비좁은 화장실에 변기와 세면대는 또 왜 이렇게 높은건지. 키작은 민족의 서러움까지 밀려왔어. 복잡한 마음을 잘 추스르고 이 또한 추억이 될거라며 일단 눕긴 했는데, 밤늦게 로비에서 드르륵 캐리어 끄는 소리와 바를 지나다니는 발소리에 내 마음은 다시 심란해졌어.
우리, 이 여행 잘 마무리하고 갈 수 있을까?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엄마가 나랑 둘이 여행 온 걸 후회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