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좁은 찻집
날씨가 좋아 파란 하늘이 비치는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은 참 아름다웠어. 하지만 풍경과 가을 낙엽을 즐기며 걷기엔 비 온 뒤 암스테르담의 날씨는 너무 추웠지. 우리는 어디라도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싶었는데 계속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다가 아주 작은 가게의 애플파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홀리듯 들어갔지. 그런데 가게는 너무 작았고 심지어 주인아저씨는 테이블이 2층에 하나 있는데 지금은 손님이 있으니 십 분 뒤에 다시 오라고 했잖아. 그 순간, 첫날 숙소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오늘의 여행 운은 다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온갖 걱정이 밀려왔어.
추웠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근처를 배회하다 다시 그 찻집으로 돌아갔어. 다행히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맞아주셨지. 찻집의 아래층에는 판매하는 찻잎들이 병에 담겨 진열되어 있었고, 우리는 테이블이 있는 2층으로 가기 위해 아주 좁고 가파른 원형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갔어. 놀랄 정도로 굉장히 좁은 집이었는데 우리 둘만을 위한 찻집인 듯 너무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였어. 우리를 기다리던 그 아담한 공간을 딱 마주했을 땐, 마치 그동안 낯선 도시에서 추운 바람을 견디며 돌아다니느라 수고했다며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어. 특히, 수제 애플파이는 너무 맛있어서 이 가격에 이렇게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지.
알고 보니 이곳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입면이 좁은 집이었는데, 지금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아저씨의 장인이 소유하고 있었어. 아저씨와의 이야기가 꽤 길었는데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굉장히 오래된 이 집의 역사를 사진과 그림들을 보여주시면서 설명해주시던 모습은 생생해. 아내의 가족 이야기가 담긴 이 집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어. 한 가족의 대를 이어 오는 집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야. 아, 반대로 이 작은 집의 대를 이 가족이 이어주고 있는 걸까? 언젠가는 아저씨의 찻집도 이 집 역사의 일부가 되겠지. 아주 나중에, 이곳을 다시 방문해 보는 것도 괜찮겠어. 아저씨가 다시 반겨주실 수도 있고, 하교시간에 맞추어 가게 문을 잠시 닫고 데리러 가야 한다던 아저씨의 딸이 어른이 되어 찻집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찻집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나오니 벌써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어. 깜깜해지기 전에 얼른 숙소로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지. 돌아가는 길에 나는 암스테르담의 야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어. 밤 8시 않았지만 아침부터 돌아다녀 피곤해진 우리는 마트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집에 들어갔어. 이제 트램도 몇 번 타보니 거리가 익숙해져서 집에 가는 길은 너무 쉬웠지. 엄마도 벌써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것 같이 느껴진다며 재미있다고 했어. 무사히 귀가하고 나니 긴장도 풀리고 한동안 불만스러웠던 반지하 호텔방도 이제 조금은 아늑하게 느껴졌어. 그날은 엄마 품에 안겨 걱정 없이 포근한 밤을 보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