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 재회
내가 네덜란드로 여행지를 정했던 이유 중 하나는 친구들이었어. 교환학생시절 가장 많이 친해진 친구들이 네덜란드 친구들이었거든. 교환학생을 통해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가끔 혼자 외국으로 훌쩍 떠나 친구 집에서도 며칠 지내보고 각 도시마다 있는 친구들을 방문하며 여행하는 상상을 하곤 했어. 엄마와 함께 가게 되어 서로 불편한 상황이 되진 않을까 잠깐 걱정도 했지만, 친구들 반응이 하나같이 "That's so sweet!"이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싱가포르에서 함께했던 내 멋진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었고, 친구들에게도 엄마를 소개해 줄 생각에 설렜어. 그리고 다들 우리를 보자마자 닮았다고 했지.
나는 엄마 닮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싫다고 한 기억이 없는데, 엄마는 왜 매번 내가 그랬다고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면, 아마 쑥스러운 마음에 장난으로 한 말이었을 거야. 부끄러워서 엄마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늘 나에게 멋지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란 걸 이제는 믿어주었으면 해. "엄마 닮았네."는 나에게 가장 큰 칭찬이야.
기억나? 네덜란드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3명이야. 각자 다른 도시인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그리고 델프트에 살고 있는데 네덜란드는 워낙 좁아서 모두 옆 동네에 사는 느낌이더라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친구는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멜리사였어. 멜리사에게 가이드를 맡길 생각이었기에 그날은 일정에 대한 고민이 없어 홀가분했지. 만나자마자 우리는 장이 열리는 골목에 가서 이것저것 길거리 음식들을 먹어보았어. 그중에 나는 하링이 가장 좋았어. 청어 조림이라고 해서 비린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연어 같기도 하면서 굉장히 고소하고 맛있었어. 여행 내내 또 먹어보자고 했었는데 아쉽게도 암스테르담에서는 그 이후로 먹어보지 못했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지만 거리로 나와서 암스테르담 골목골목의 다양한 가게들을 구경하며 계속 걸었어. 교환학생 때부터 느꼈는데, 유럽 친구들은 굉장히 많이 걷는 것 같아. 다들 다리가 길 어서 그런지, 지하철이나 버스 두 세 정거장 정도는 그냥 걷자는 반응이어서 함께 다니다 보면 다리가 아파서 좀 힘들 때도 많았어. 그날도 어김없이 멜리사는 암스테르담의 모든 거리를 다 걸을 기세로 거리를 활보했고, 우린 점점 뒤처지면서 말이 없어졌어. 안 되겠다 싶어서 카페에 가자고 했는데,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거나 분위기가 썩 끌리지 않았지. 결국 좀 더 걷다가 멜리사의 단골 카페라는 곳에 들어갔어. 마침내 따뜻한 차와 커피를 시키고, 멜리사와 나는 그동안 각자 지내온 이야기를 나눴어. 그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는지 엄마는 슬며시 일어나 사진을 찍어주더라고. 엄마와 멜리사도 서로 이야기를 했는데, 예전보다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영어를 하는 엄마가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좋았어.
이번 여행 내내 엄마와 함께 붙어 지내면서 내가 엄마를 떠나 성장하는 동안, 엄마의 시간도 참 많이 흘러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외모도 몸도 많이 변했는데, 왜 엄마와 아빠는 늘 그대로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얻으며 자라는 동안, 엄마는 많이 알았던 것들도 점점 잊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거야. 내 기억 속, 유럽의 어느 호텔에서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 떼쓰던 나를 위해 유창한 영어로 따뜻한 물을 받아다 주던 엄마의 모습은 이제 없었어. 우리가 함께 해외여행을 한 게 얼마나 오래전 일이었는지 새삼 느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