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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Oct 15. 2021

06. 취향저격 잔세스칸스

암스테르담 근교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를 가는 날은 여행 일정 중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날이었어. 엄마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니까. 네덜란드에 오기 전, 나는 운하를 따라 아기자기한 집들이 옆구리를 맞대고 줄지어 서있는 도시를 걷는 상상을 했었다면 엄마는 가장 먼저 풍차마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도시에 빨리 지쳐버린 엄마를 위해 풍차마을을 더 일찍 가고 싶었지만, 화창한 날을 기다리다 보니 결국 암스테르담 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가게되었네. 무사히 기차표도 잘 끊었고 갈아타는 곳에서는 친절한 노부부를 만나 목적지로 가는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어. 다행히 날씨는 너무 좋았고, 풍차마을이 보이자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어. 네덜란드에 온 후 보기 힘들었던 파란 하늘이 오늘 짠 하고 나타난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풍차마을 입구부터 신이 난 엄마를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우리는 구석구석 돌아다녔지.

잔세스칸스 풍경


풍차 안에는 박물관처럼 풍차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사진과 글이 전시되어 있었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 볼 수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올라가기엔 가파른 것 같아 나만 올라가서 보고 내려왔지. 나는 여행을 다니면 항상 높은 탑이나 성곽 위에 올라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 같아. 친구들이랑 유럽 여행을 갔을 때에도 바람이 쌩쌩 불고 발 한번 헛디디면 몇십층높이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탑에 혼자 올라간 적도 있었거든. 어릴 적 살았던 우리 집이 아파트 14층이어서 일까. 나는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이 너무 좋아. 반면, 엄마는 푹신한 흙을 밟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보였어. 암스테르담에서는 아스팔트와 돌바닥을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했는데 풍차마을에서는 엄마가 한참을 걸어도 피곤해하지 않는 거야.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앞으로의 일정에 도시보다는 근교 시골마을을 많이 넣어야겠다고 다짐했어.


나막신과 자전거 벨


나막신에 네덜란드스러운 그림들을 그려 팔고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하나 사 오고 싶은 거야. 그래서 어떤 게 가장 예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순간 멀쩡한 나막신들이 마구 쌓여있는 박스가 보였어. 가까이 가서 보니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나막신들 중 살짝 스크래치가 나거나 깨져서 팔 수 없는 것들을 쌓아놓고 싸게 팔고 있었지. 그것을 본 엄마는 “이걸 사가면 아빠가 매끈하게 다듬어 줄 거고, 네가 거기에 그림을 그리면 완벽하겠다.”라고 했어. 엄마의 제안에 솔깃해서 그 많은 나막신 더미를 열심히 뒤져 그나마 제대로 된 것들로 한 쌍을 맞춰 샀어. 그 나막신은 2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직도 날 것 그대로 있지. 그냥 제대로 그림 그려진 예쁜 나막신을 사 올 걸 그랬나. 엄마는 주방에 걸어 둘 예쁜 접시를 샀고, 나는 아빠가 얼마 전 경품으로 받아 온 자전거에 달려고 풍차가 그려진 벨을 샀어. 너무 만족스러운 산책과 소박한 쇼핑을 마친 뒤 다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내내 아쉬운 마음에 풍차마을을 뒤돌아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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