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던 동네처럼 익숙해진 암스테르담을 떠나 델프트로 가는 날이었어. 암스테르담은 이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겠다며 새로운 도시로 가볍게 출발했지. 네덜란드는 직접 와보니 훨씬 더 작은 나라였어. 기차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델프트에 도착했어.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사람은 스테파니였어. 싱가포르 교환학생 시절 나의 최장신 룸메이트지. 여전히 길쭉하고 털털한 그 친구는 엄마와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숙소까지 데려다주었어. 평소와 달리 지도를 보지 않고 든든한 친구를 따라가니 델프트의 첫인상을 눈에 많이 담을 수 있었어. 델프트는 워낙 작은 동네라 조용하고 한적했어. 운하가 많아 매 번 캐리어를 들고 다리를 건너야 했지만, 스테파니 는 최대한 계단이 없는 길로 안내해주었어. 그렇게 처음 맞이하는 델프트는 나와 스테파니가 안부를 묻는 말들과 엄마의 웃음소리, 돌바닥에 캐리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아주 가끔 졸졸 흐르는 운하의 물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어.
호텔 예약 페이지의 사진과 정말 똑같은 모습의 건물이 보였어. 빨간 어닝이 눈에 띄고 운하를 건너는 다리 바로 앞에 있어 찾기 쉬운 건물이었어. 체크인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방이 준비되어있다며 직원은 우리를 바로 옆 건물로 안내해주었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이곳이 천국이라며 너무 좋아했어. 탁 트인 높은 층고와 큰 창을 가진 넓은 침실, 그리고 복도로 분리되어있는 화장실까지. 이름만 번지르르했던 암스테르담의 반지하 호텔방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지. 속으로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 반지하 호텔방도 괜찮다 했던 엄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창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탁 트인 창밖의 풍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큰 행복인 엄마인데 말이야. 엄마의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서 여행 중 나에게 가장 고마운 숙소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