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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Oct 24. 2021

14. 나에게 엄마는

  방에서 짐을 풀고 조금 휴식을 취한 후,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어. 위트레흐트의 거리는 날씨도 좋아 활기차 보였어. 성당의 정원에서 사진도 마음껏 찍고 거리의 갤러리에도 들어가 구경도 했지.  어느 대학 건물 앞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양복을 입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어. 40여 명의 백발의 할아버지들은 합창을 하고는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어. 아마 평생교육 같은 과정을 수료하는 기념사진을 찍는 듯했어.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나이가 들어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하며 바라보더라고. 내가 보았을 때 누구보다 배움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엄마인데 말이야.


단체사진 찍는 할아버지들


  나에게 엄마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열정이 대단해. 그런 엄마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나만 힘들게 공부한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 항상 공부를 하는 내 옆에는 엄마가 책을 읽고 있거나, 무언가를 늘 공부하고 있었어. 심지어 혼자 공부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방에서 나와 거실에 가면, 엄마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었어.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늘 그런 모습들 뿐이어서 '왜 나한테만 공부하라고 하느냐' 혹은 '배우는 것이 재미없다.'라는 말은 한 적이 없어.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아서 엄마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항상 나의 든든한 동료이자 나의 라이벌이었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그래. 뭐든지 엄마보다 잘하고 싶은데, 아직도 마음만 앞서고 모든게 서툴러.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라우라, 스테파니 그리고 멜리사를 다 함께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어. 새로운 도시에 익숙하지 않은 첫날에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것은 마음도 편하고 좋았어. 알고 보니 이 세 명의 친구들은 같은 나라에 있었지만 세 명이 다 모인 것은 싱가포르를 떠난 후 처음이라고 했어. 우리 다섯 명은 일단 근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한 잔씩 시켰어. 참, 친구들을 만나러 오는 길에 어느 카페 앞을 지나는데 카페테라스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거리를 보는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있어서 당황스러웠던 거 기억나?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서양의 사람들은 나란히 앉는 경우가 더 많았어.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서로 옆에 있어야 말소리가 더 잘 들리지 않느냐고 하더라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어.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앞에 앉은 사람에게 말하려면 목소리도 커지고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다 보면 더 시끄러워지잖아.


위트레흐트 대학의 도서관


  시내를 돌아다니면 이따금 대학교라는 간판이 새겨져 있는 건물이 뜬금없이 나오곤 하는데, 라우라가 다니는 대학의 건물도 있었어. 이곳의 대학교는 우리나라의 대학처럼 담장에 둘러싸인 캠퍼스로 되어 있지 않고, 도시 곳곳의 옛 건물들에 각 부서가 흩어져 있었어. 라우라는 도서관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옛 건물의 내부에 필요한 부분들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해서 학교의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더라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참 아름다운 도서관이었어. 혼자 여행을 했더라면 보지 못했을 곳들을 친구들 덕분에 많이 보았고, 위트레흐트까지 기차를 타고 달려와준 스테파니와 멜리사에게 참 고마웠던 하루였어. 네덜란드에서 친구들과의 마지막 식사는 모두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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