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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Oct 24. 2021

15. 건축 공부

위트레흐트 슈뢰더 하우스

슈뢰더 하우스


  위트레흐트에 머무르기로 한 이유는 라우라가 지내고 있는 곳인 이유도 있었지만, 유명한 건축가인 리트벨트의 대표작인 슈뢰더 하우스를 방문해 보고 싶어서야. 슈뢰더 하우스의 내부를 보려면 미리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야 해. 우리는 오전 10시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어. 아침을 간단히 먹고 엄마와 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린 뒤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보며 한참을 걸었어.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가를 걷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대학교 강의 시간에 피피티에서만 보던 그 집이 딱 나오는 거야. 그 집이 바로 슈뢰더 하우스였어. 그 주택가에 이방인이라고는 모두 슈뢰더 하우스를 보러 온 사람들뿐 인 듯했어.


  슈뢰더 하우스는 유명한 건축가 게리트 리트벨트가 슈뢰더 부인의 의뢰로 설계한 주택이야. 의뢰인 슈뢰더 부인은 젊은 과부였고, 자신과 세 아이들이 살 집을 원했어. 그녀는 자신과 아이들이 원하는 집에 대한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대. 구체적인 그녀의 의뢰 덕분이었을까, 그 시대에 굉장히 모던하고 세련되면서도 한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반영한 평면을 가진 집이었어. 가이드와 함께 일층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전화를 받으며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과 빌트인 가구와 같이 같이 실제 사용자의 생활을 고려한 디자인이 돋보였어. 2층에서는 왜 리트벨트와 슈뢰더 하우스가 대단한지 깨달을 수 있었어.  실용적인 공간 활용으로 의미가 있는 주택이라는 이야기는 수업시간에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어떻게 가변적 공간이 이루어지는지는 잘 몰랐거든.



작업실과 계단실 사이의 창문


  내가 리트벨트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탓일 수도 있지. 가이드는 2층으로 올라가자 벽을 마법사처럼 이리저리 바꾸기 시작했어. 미닫이를 열면 안보이던 화장실이 보이기도 하고, 방이 확장되기도, 분리되기도 했어.  2층에는 거실과 식당, 침실을 모두 갖춘 통합된 공간이 있었는데, 밤이 되면 각자의 침실을 분리할 수 있도록 칸막이 벽이 설치되어 있더라고. 가이드는 공간을 설명하는 내내 칸막이 벽을 들문처럼 들어 올리기도 하고, 바닥의 홈을 따라 밀기도 했어. 그 현란한 움직임에 놀라기 바빠서 엄마도 나처럼 신기하고 놀랐는지 그 표정을 보지는 못했네. 다만 엄마가 “그래, 바로 이런 거야.”하면서 내뱉은 감탄사는 기억해. 주택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나보다도 더 아는 것이 많은 엄마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런 집이 여러 채 있었을지도 몰라.


슈뢰더 하우스의 주방

 

  요즘 청주의 우리 집 텃밭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잖아. 엄마는 슈뢰더 하우스를 예로 들며 실용적이면서도 가변적인 공간을 원한다고 얘기하기도 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슈뢰더 부인과 닮은 것 같아. 그녀는 원래 큰 저택에 살고 있었대. 그런데 아름답지만 몸집만 너무 큰 저택이 싫어져서 작으면서도 잘 짜인 주택이 갖고 싶었다고 해. 딱 엄마의 이야기 같지 않아? 7년 전, 아빠와 엄마가 주택 도면을 보면서 이야기할 때, "나는 거실만 크면 돼!"라고 말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어. 이제는 큰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는 집 안에 엄마의 아지트로 쓸 공간을 찾지 못해서 작고 딱 필요한 기능을 갖춘 별채를 원하게 되었잖아.


  두 층을 합쳐 40평 남짓인 이 작은 집에서 그녀는 아주 만족하며 죽기 전까지 살았대. 무려 61년 동안 말이야. 언제가 될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리트벨트처럼 엄마를 위한 맞춤옷 같은 집을 지어주고 싶어. 그 집에서 엄마도 만족하며 오래오래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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