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건축 스케치
‘뉴요커의 쇼핑’을 상상할 때면, 소호(SoHo)의 트렌디한 편집숍이 늘어선 거리를 거닐거나, Fifth Avenue를 따라 이어진 명품 매장들을 구경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멋진 장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가끔 그런 친구를 따라가거나, 소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고는 근처 바에 들러 기분이나 내는 정도였다.
졸업 후 월급쟁이가 된 나는, 5번가에서 한가로이 명품을 구경할 지갑도, 시간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벤트나 모임이 닥쳤을 때, 옷이나 선물을 사러 가장 부담 없이 찾던 곳은 34번가의 Macy’s 백화점이었다.
Macy’s의 역사와 건축
Macy’s는 1858년 로울랜드 허시 메이시(Rowland H. Macy)가 작은 매장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1902년 지금의 자리인 맨해튼 헤럴드 스퀘어(34번가)에 대규모 본점을 세우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상업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철골구조를 사용해 당시에는 드물던 넓고 개방적인 쇼윈도를 구현했고, 외관은 보자르(Beaux-Arts) 양식의 영향을 받아 대칭적 파사드와 장식적 요소들이 두드러진다.
내부에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 에스컬레이터가 남아 있다. 처음 그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때, 나무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마치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를 타는 듯한 느낌을 생각나게 했다.
뉴욕의 연말 배경이 된 Macy’s
Macy’s의 제품들은 이름 있는 브랜드를 모아놓았지만, 어딘가 트렌드에 한 발 늦은 듯한 인상이 있다. 높은 퀄리티의 명품이라기보다는, Macy’s 자체 라벨이나 가성비 중심의 상품 구성이 많다. 어쩌면 그것이 이 백화점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 단위 손님이나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는, ‘뉴욕 시민의 백화점’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뉴욕 시민들에게 Macy’s는 단순한 백화점 브랜드를 넘어, 도시의 일상과 축제의 일부다. 대표적인 예가 매년 열리는 추수감사절 퍼레이드(Macy’s Thanksgiving Day Parade이다. 1924년 시작된 이 퍼레이드는 단 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매년 이어져 왔으며, 거대한 헬륨 풍선과 관악대, 댄서들이 행진하는 뉴욕 최대의 연중행사다. 추수감사절 아침이면,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두꺼운 외투와 담요, 접이의자를 들고 새벽부터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유학 온 첫 해, 나도 친구들과 함께 새벽 일찍 일어나 퍼레이드를 보러 나갔다. 사우디에서 온 오마르라는 친구가 퍼레이드에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평소 아침 수업에 늘 지각하던 아침잠 많은 친구였는데, 그날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전화를 걸어 우리를 깨웠다.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했다. 덕분에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간 거리에서 본 퍼레이드는 예상보다 훨씬 인상 깊었다. 거대한 풍선과 음악, 인파에 둘러싸여 있자 “미국의 스케일”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이 퍼레이드는 매년 NBC를 통해 생중계되며, “추수감사절 아침 = Macy’s 퍼레이드”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미국인들의 명절 풍경이 되었다. 또한 〈Miracle on 34th Street〉, 〈Enchanted〉, 〈Elf〉 같은 영화에서도 Macy’s 본점과 헤럴드 스퀘어가 종종 등장하며, 뉴욕의 상징적 배경으로 자리한다.
물론 뉴욕의 화려한 백화점을 떠올리면 Fifth Avenue의 Saks가 먼저 언급되기도 한다. Saks는 럭셔리 브랜드와 조명을 활용한 화려한 쇼윈도로 유명해, 뉴욕 상류층의 세련된 이미지를 대변한다. 반면 Macy’s는 훨씬 더 대중적이고 친근한 백화점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고, 쇼윈도 앞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계절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 Macy’s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뉴욕의 일상과 축제를 담아내는 무대가 되어왔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Macy’s는 여전히 “뉴욕다운 하루”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