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건축 스케치
악명높은 뉴욕의 지하철은 출근길에 간혹 내가 내려야 하는 23번가를 지나쳐 그 다음 역인 14번가, Union Square Park에 내려주었다. 그때마다 사실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14번가에서 내려서 5th Avenue를 따라 걸어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건물들 덕분이었다. 다채로운 양식의 멋진 건물들과, 그 안을 장식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의 쇼윈도, 예쁜 카페들을 보며 지나가는 그 길을 참 좋아했다.
유난히 이 길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Union Square에서 22번가에 있는 우리 회사까지 가는 길은 Ladies’ Mile이라는 역사지구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Ladies’ Mile은 19세기 말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번성했던 쇼핑 지구이며, 1989년 뉴욕시 랜드마크 보존위원회에 의해 역사지구로 지정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뉴욕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었고, 이 기간 동안 중산층 여성이 도시 소비의 핵심 주체로 부상하였다. 이에 맞춰 대형 백화점과 고급 상점들이 북쪽으로 확장되었고, 5th Avenue와 Broadway를 따라 (대략) 14번가~23번가 일대가 여성 고객을 중심으로 한 쇼핑 거리로 자리 잡았다.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이 지구에는 뉴욕을 대표하는 백화점과 상점들이 자리했다. 또한 고급 레스토랑, 서점 및 출판사, 쇼룸, 공연장 등 다양한 시설들도 있었기 때문에 부유층과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치안이 비교적 잘 유지된 환경 덕분에 여성들이 남성의 동행 없이도 안전하게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고, 그 결과 Ladies’ Mil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01 Broadway는 1870년에 완공된 건물로, 당시 Ladies’ Mile 구역이 쇼핑거리로 번성하던 시기에 Lord & Taylor 백화점 건물로 설계되었다. Lord & Taylor는 뉴욕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 브랜드이며, Ladies’ Mile과 더불어 성장한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이후 뉴욕의 쇼핑 중심축이 Broadway에서 5번가로 이동하면서, 1914년 북쪽으로 본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Cast-Iron Building
건축적으로 901 Broadway는 그 시대의 기술과 미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건물은 당시 최신 재료였던 주철과 유리를 적극 사용한 상업건축이다. 주철 구조는 장식적 입면의 섬세한 디테일을 구현하면서도 대형 창과 넓은 개구부를 가능하게 했는데, 이를 통해 당시 큰 쇼윈도와 밝은 실내가 중요해진 근대적 소매 공간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다.
French Second Empire
건축 양식으로는 French Second Empire 스타일이라고 분류된다. 세컨드 엠파이어 양식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요소는 맨사드 지붕과 타워 형태의 건물 상부 실루엣이다. 맨사드 지붕(Mansard Roof)은 지붕의 각 면이 두 번 꺾이는 2단 경사 지붕 형태를 말한다. 아래쪽 경사는 가파르게 떨어지고 위쪽 경사는 완만하게 누워 있는데, 이렇게 만든 이유는 지붕 아래 다락 공간을 방처럼 넓게 쓰기 위해서였다. 또한 Second Empire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맨사드 지붕은 건물을 더 화려하고 도시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다.
건물의 코너 부분을 그냥 직각 처리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깎아 시선을 코너부로 몰리게 한 뒤, 그 위에 높은 타워를 세운 형식 또한 세컨드 엠파이어 스타일의 요소이다. 코너가 건물의 얼굴이 되도록 디자인한 것이 특징적이다.
사라진 백화점들과 남겨진 풍경
현재 Ladies’ Mile의 백화점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사라졌고, 건물들은 오피스와 스튜디오, 그리고 리테일이 섞인 혼합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용도는 이전과 달라졌지만, 19세기 후반 유행했던 다층 상업/로프트 건물들이 보존 지구로 지정되고 보호되어, 거리 풍경 자체는 Ladies’ Mile 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901 Broadway 역시 지금은 리테일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건물 전체가 아닌 코너 부분만 남아 있다. 웅장하고 화려하던 백화점 건물이 위축된 모습이 아쉽지만, 얼핏 지나치면서 보아도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디테일의 존재감은 그 당시 Ladies’ Mile의 화려함을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