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생존자 천재피아니스트 소년의 성장기 2_수학 노트가 그렇게 힘들었나
"와 우리 연석이 정말 대단한데"
나는 수학을 가르칠 때 반드시 '수학노트'를 만들게 한다.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어떤 공식으로 어떻게 풀어 내려갔는지 체계화하는 훈련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객관식 문제들만 듬성듬성 대충 답을 찍어 내려가던 연석이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노트를 사주고, 노트에 문제를 꾸준히 풀어내려 가는 훈련을 시켰다.
노트를 쓰는 것에 대한 저항이 다소 있었으나 함께 수업할 때는 곧잘 따라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업을 하기 전 받아본 숙제에서 연석이는 너무나 훌륭하게 노트까지는 아니었지만, 문제집 문제 여백에 수학 문제를 푼 과정을 잘 정리해 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답도 딱딱 맞았고, 풀이 과정도 아주 훌륭했다.
세 번째 만에 이렇게 눈에 띄게 좋아지다니
한 달음에 달려가 연석이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드디어 과외수업을 하는 날.
연석이에게 폭풍 칭찬을 해주고, 눈을 바라보고 풀이과정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문제를 풀어보니 어떠했는지 느낌을 물어봤다.
5초 정도나 흘렀을까...
짧은 순간이었는데
나의 눈과 마주한
아이의 눈에서 많은 감정이 교차되는 것이 느껴졌다.
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불안 같아 보이기도 하고, 두려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내 1분도 안되어 아이는 두 볼이 붉어지며
"선생님, 사실 이거 제가 혼자 푼 건 아니고요. 문제집에 있는 큐알코드를 찍었더니 인터넷 강의가 나오더라고요. 그거 보면서 공부하다가 받아 썼어요"
답안지를 떼어서 내가 갖고 있었던 상황이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다.
이걸 혼내야 하나...
무작정 베낀 것도 아니고 공부하면서 썼다는데, 나무라야 하는 걸까...
사실 본인이 직접 풀어낸 것이라고 말한 적도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도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너무 무섭지 않았던 걸까.
나의 당황스러움을 아이는 눈치챘을까?
급하게 마음을 수습하고 "으응~ 인터넷 강의 볼 수는 있는데, 인터넷 강의 보면서 풀면 아마 연석이가 다 아는 것 같을 거야. 혼자 풀어보고 난 후 인터넷 강의를 보는 방식으로 해 보자"라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넘어가지 못했다.
"선생님, 저한테 실망하셨죠?"라고 겸연쩍게 물어온다.
이쯤에서는 아이의 갈등을 줄여주기 위한 단호함이 필요했다.
"아니야, 연석아. 실망하지 않았어. 그냥 연석이가 왜 이렇게 한 건지 좀 연석이 생각이 궁금할 뿐이야"
연석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선생님, 저는 누군가가 제게 실망하는 게 제일 무서워요.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이랑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받아 정리한 건데, 선생님이 칭찬하시니까 사실대로 말해야 했어요."
놀라운 고백이었다.
"연석아, 선생님은 연석이가 인터넷 강의를 보고 풀었다는 사실을 바로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것만으로도 매우 고맙고, 연석이가 귀하다고 생각해.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데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용기 칭찬할게" 이렇게 말하자, 내 마음도 정리가 되었다.
아이는 '실망'이라는 너무나 큰 두려움을 직면한 상태에서도 5초간의 갈등 이후 정직을 선택했다.
너무 용감하고 귀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숙제를 안 시킬 수는 없다. ^^
대신 티 안 나게 숙제의 양을 살짝 줄여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연석아 한 문제를 풀더라도 연석이 힘으로 차분하게 노트하며 풀어서 선생님한테 보내줘. 그게 중요한 거야"
세 번째 만에 아이와 둘만의 이야기가 생겼다.
아이의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