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생존자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성장기 4 _ 손
"선생님~ 연석이 이번 콩쿠르 대회에서 1등 했어요"
평소 연석이 돌봄을 챙겨주시던 한 선생님의 연락에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웠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하고, 예쁜 아이이지만, 평소 옆에서 보면 늘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이 공부하기 싫어하고, 수다쟁이에, 장난꾸러기에, 수업이 길어지면 하품하고 늘어지는 작은 아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1등이라니, 그것도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레슨에 몰두해 오던 아이들을 모두 제치고 말이다.
연석이는 사실 피아노를 집중적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었다. 동네 학원 선생님이 겨우 봉사 겸 레슨 겸 하셔서 일주일에 세 번 2시간씩 연습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는 늘 연석이 혼자만의 연습이 이어져왔다. 그런데도 이렇게 1등을 한 것이다. 진짜 천재였구나 싶었다.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연석이가 옆에서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처음 눈에 들어왔다.
연석이의 손.
10대 초반 작은 체구의 남자아이, 마르고 몸 전체가 가느다란 이 아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손이었다. 손 만 보면 두껍고 강인하고, 마디가 굵었다. 검은 털도 제법 보송하게 올라와 있는 남자의 손이었다. 연석이의 피아노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생동감은 저 손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나 보다 싶었다. 그러면서 보니 그동안 어린아이의 얼굴 같이 느껴졌던 연석이 얼굴에 제법 붉은 여드름들이 솟아 올라와 있다. 좁쌀 같이 올라온 것들이 조만간 더 영글면 연석이 얼굴이 여드름으로 곧 뒤덮이겠다 싶었다.
그렇다. 연석이는 두 번째 생명력을 움틔우고 있는 사춘기였던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뱃속에서 자신을 지켜내 이 세상에 보내준 엄마로부터 받은 첫 번째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내고, 이제 연석이만의, 연석이 색깔의 두 번째 생명력을 움틔우고 있는 연석이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를 직접 낳고 피를 나눈 엄마도 이때쯤 되면 아이가 미워지기도 하고, 미운 모습들도 눈에 뜨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 기관의 어머니들은 연석이를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하며 지켜주고, 아이의 성장에 맞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준비하고 계신다. 이곳 아이들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재능을 잘 찾아 여러 형태로 잘 성장하고 있다. 리듬체조를 준비하는 아이, 연석이처럼 피아노로 진로를 정한 아이, 축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아이 등.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관찰하며 아이의 재능을 찾아 특화된 교육을 시켜주고 있다.
"연석이가 너무 숙제를 안 해요. 정말 미워요. 선생님~" 이렇게 툴툴대시며 하소연하시는 어머니의 말에서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다. '낙태 생존 아이들이 있는 기관에 가서 돕고 싶다'는 프레임으로 이곳에 온 내가 부끄러울 정도다. 이 어머니들에게 아이들은 내가 출산한 내 아이와 다름없는 '또 한 명의 내 아이'일뿐이다.
내가 다른 생각의 줄기들로 빠져가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문제를 풀던 연석이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저희 반에는 여자애들이 진짜 많거든요. 그런데 다 이상해요. 정상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정상이 아닌지 물어보자 답도 못한다.
"그냥 다 괴물 같아요"
자기와 다른 이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열리고 있는 거였다.
참 예뻤다.
그렇게 연석이의 두 번째 봄은 시작되고 있다.
연석이의 두 번째 봄은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몸부림치게 역동할 것인가.
그 시기를 함께 해 줄 수 있음에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