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생존자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성장기 5 _ 선택
내 삶의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대학, 취업, 결혼, 출산, 자녀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는 것...?
그 모든 것이 목적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삶으로, 세월로 몸소 터득하고 깨닫고 있는 나이다.
기자로 20년을 살아온 세월.
그렇다면 나의 목적지는 어디이기에 사회복지의 길에 들어섰는가.
또 나의 목적지는 어디이기에 낙태 생존자 가족에게 뜨거운 마음을 품게 되었는가.
"선생님, 연석이를 아무래도 자퇴시켜야 할 것 같아요"
연석이 어머니의 고민이 다소 섞인 듯한, 하지만 이미 결심한 듯 단호한 어조의 말이 이런 생각들로 나를 이끌어 들였다. 이 기관의 아이들은 모두 이 기관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다닌다. 함께 공부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 있다.
그런데 연석이의 경우는 매우 특별하다. 피아노를 매우 잘 치다 보니 예술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연석이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이고, 연석이도 그 기회에 감사하며 학교를 잘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연석이에게는 성적도 중요했고, 과외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석이와 너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연석이의 SNS를 확인한 연석이 어머니는 친구들과 거칠게 대화하고 다투는 연석이의 모습을 보게 됐고, 그때부터 많은 고민을 해 오신 듯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레슨을 집중적으로 시키면서 학교까지 보내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 것이었다. 점점 연습량도, 실력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재정적인 부담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이런 이유들이 연석이가 자퇴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말해주고 있지만,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연석이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한 학년은 마쳐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의 섣부른 개입은 연석이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기에 입을 다문다.
연석이는 생각 외로 담담했다.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면 저는 괜찮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연석이의 앞으로의 계획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돕기로 했다.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다. "목적지로 가는 방법과 길은 여러 개이고,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다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거니까. 그래. 연석아 우리 힘내서 잘 가 보자"라고 격려했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마음이다.
그렇게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던 연석이는 정작 학교에서 아이들과 인사하고 나오는 날이 되자 눈물을 왈칵 쏟는다. 마음을 물어보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도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리라. 그 눈물의 의미를 어떻게 그 작은 아이가 설명하랴.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제 학교 숙제 안 해도 되어서 좋아요"라며 개구 짖게 조잘댄다.
자기가 선택한 것인지, 부모의 선택인지. 연석이는 아마 분별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연석이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쉽지 않은 큰 선택 앞에서 연석이의 마음과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파도에 휩싸이고 있다. 그렇지만 멈춰 서지 않고, 주춤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아이는 자기가 가야 할 길, 피아노를 향해 한 발을 또 내딛는다.
그래 연석아,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지.
이번에는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상투적으로 했던 그저 그런 말이 아니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나의 고백 같은 말이었다. 그 작은 아이가 나의 내면에 큰 바람을 일으킨다.
뭔지도 모를 한 발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딛는 연석이의 모습과 용기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만 하며, 가만히 움츠려 있던 나의 작아진 마음에게 '조금 더 펼쳐보라, 한 번 더 열어보라, 한 걸음 더 내디뎌보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연석이는 한 주의 쉼을 갖고 또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나와는 더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됐다. 연석이를 더 자주 볼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는 셈이다.
격려해주고 싶어서 대형 서점으로 데리고 나오자 만화책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연석이는 자란다. 또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