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나 : 숲의 수호자들 (35편)

뒤틀린 미로의 그림자

by 아르망

후-

서리가 촛불을 불어 끄자,

지하실은 순식간에 끈적하고 무거운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미세한 진동.


"질... 컥... 질... 컥...."

저 위층, 낡은 풍차의 입구에서부터

무언가 무겁고 축축한 것이 낡은 마룻바닥을 밟으며

지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서리의 당혹스러운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대체 누구지...?"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줄기의 가시처럼

날카롭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여긴 잊혀진 곳이야.

마을 주민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 오래된 장소라고.

그런데 망설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어..."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올 때마다,

낡은 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그들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끼이익..턱...끼이익..턱."


다섯 계단..네 계단..

마치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목을 조여 오는 듯한 압박감.

낡은 계단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수십 년 묵은 집의 관절이 하나씩 어긋나며 비명을 삼키는 것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습니다.


서리가 잽싸게 바닥의 양탄자를 걷어냈습니다.

시커먼 입을 벌리며 드러난 '비밀의 통로'.


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습니다.

(들어가)

알루스가 주저하며 서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하다 못해 서늘했습니다.


(소리 내지 말고 따라와, 어서)

서리는 망설임 없이 검은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곧이어 바닥 밑에서 그녀의 낮은 손짓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루스가 루칸의 어깨를 꽉 쥐었다 놓으며,

날렵하게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제 남은 건 루칸뿐.

그가 지하 통로 안으로 한쪽 발을 집어넣는 순간이었습니다.


"턱"

발소리가 지하실 문 바로 앞에서 뚝 멈췄습니다.

루칸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문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 아래,

그는 보았습니다.


"끼..이..익..."

녹슨 문고리가... 마치 살아있는 뱀의 머리처럼,

아주 천천히, 기괴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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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칸!! 빨리!!"

아래에서 서리의 다급한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루칸은 공포에 질린 시선을 문고리에서 억지로 떼어내며,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지듯 통로의 문을 닫았습니다.


"...끼이... 익..."

마침내,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낡은 문이 오래 눌려 있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열리자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폭포수처럼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먹잇감의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게를 실어 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중압감.


천장의 널빤지 틈새로,

먼지 섞인 희미한 달빛과 함께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잘려

지하실 바닥으로 뚝, 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루칸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이 고요를 깨뜨릴까 봐,

손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굳어 가는 것도 모른 채 버텼습니다.


"쿠..웅...쿠..웅.."

머리 위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마치 그들의 정수리를 직접 밟고 있는 것처럼 생생했습니다.

널빤지 사이로 흩날리는 묵은 먼지가

마른 눈처럼 셋의 어깨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차가운 손이 루칸의 손목을 낚아챘습니다.

서리였습니다. 그녀는 소리를 내는 대신,

강한 힘으로 루칸을 잡아끌었습니다.


'여기 있으면 들켜. 더 깊이 들어가야 해.'

그녀의 손아귀 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셋은 마치 쫓기는 쥐 떼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어둠의 통로 안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불 켜지 마."

어둠 속에서 서리의 목소리가 바늘 떨어지는 소리보다 작게,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로 들려왔습니다.


"이곳의 어둠은 빛을 보면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드니까.

오직 손끝의 감각만 믿고 걸어. 오른쪽 벽.

벽에서 손을 떼는 순간, 너희는 엉뚱한 시간 속에 갇히게 될 거야."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서리의 말대로 거대한 뱀의 뱃속 같았습니다.

간신히 허리를 굽혀야만 지날 수 있는 좁고 축축한 통로.

오래전 죽은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엉키고 설켜,

마치 거대한 짐승의 갈비뼈처럼 통로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지요.


손끝에 닿는 뿌리의 감촉은 미끌거리는 점액질로 덮여 있어,

마치 허물을 벗고 난 직후의 뱀 가죽을 만지는 듯 차갑고 끈적했습니다.


서리가 앞장섰고, 그 뒤를 알루스가,

그리고 루칸이 맨 뒤에서

천장을 뚫어지게 보며 숨을 죽이고 따랐습니다.


질척, 질척. 발을 뗄 때마다

바닥이 발목을 잡아당기는 소리가 좁은 통로를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위층의 방문자에게 들리지 않기를,

그저 간절히 바랄 뿐.


얼마나 걸었을까. 루칸은 점점 숨이 가빠졌습니다.

이 좁은 어둠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만 같은 느낌.

앞서가는 알루스의 숨소리와,

서리의 발자국 소리만이 유일한 이정표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서걱."


바로 루칸의 귓가에서,

아니, 그의 어깨 바로 위에서

누군가 마른 낙엽을 비비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루칸이 멈칫하며 앞을 향해 속삭였습니다.


"알루스?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하지만 앞서가던 알루스는 대답 없이

묵묵히 어둠을 헤쳐 나갈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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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

턱.

누군가의 차갑고 딱딱한 손이 루칸의 발목을 낚아챘습니다!


"악!"

비명을 지를 뻔한 루칸이

반사적으로 발길질을 하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분명했습니다. 바닥에서 솟아난 무언가

발목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던

그 소름 끼치는 집요함.


"루칸!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앞서가던 서리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루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방금 내 발목을 잡은 건 뭐지?

그리고... 지금 내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이 비릿한 인기척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알루스... 어디에 있어요?"

루칸은 떨리는 손으로 앞의 허공을 더듬었습니다.

분명 알루스의 등이라 생각했던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축축하게 젖은 뿌리들이 엉켜있는 차가운 벽만 있을 뿐.


치익-

그때, 참다못한 서리가 성냥을 그어 불을 밝혔습니다.

화르륵 타오른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좁은 통로의 어둠을 밀어냈습니다.


"!!!!"

불빛 아래 드러난 것은, 텅 빈 통로뿐이었습니다.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도,

그의 앞에서 인기척을 내던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의 벽면.

뒤엉킨 나무뿌리들 사이로 기괴하게 비틀린 틈새가 하나 있었는데...

그 틈새에, 마치 누군가 억지로 박아놓은 듯한 물건 하나가 꽂혀 있었습니다.

'붉은 깃털.'


그리고 그 아래에는 서리가 여기로 오기 전 경고했던

그 섬뜩한 증표,

'이끼 낀 검은 돌조각'이

마치 루칸을 보고 웃는 눈동자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서리가 깃털을 뽑아 들며 싸늘하게 중얼거렸습니다.


"벌써.. 누군가 다녀갔어.."

그녀가 든 성냥불이 일렁이며 셋의 그림자를 벽에 비췄습니다.


그때, 루칸은 보았습니다.

벽에 비친 알루스의 그림자가...

주인과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루스는 분명 몸을 숙인 채 땅을 보고 있는데,

벽 위의 검은 그림자는 고개를 돌려

루칸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루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습니다.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듯 요동쳤습니다.

"......"

다시 뜬 눈앞에서, 성냥불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에 비친 알루스의 그림자.

그것은... 멀쩡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스스로 고개를 뒤로 돌려 루칸을 빤히 쳐다보던

그 기이한 형상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앞을 향해 묵묵히 서 있는

친숙하고 듬직한 실루엣만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잘못... 본 건가?'

루칸은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그래, 흔들리는 불빛 때문이었을 거야.

빛과 그림자가 춤을 추다가 만들어낸 우연한 착시였을 거야.

그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본능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눈꺼풀 안쪽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보내던

그 '서늘한 시선'의 잔상이 뚜렷하게 남아서,

자꾸만 눈앞의 현실을 덧칠하고 있었습니다.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서리의 건조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습니다.

그녀는 벽에 박힌 '이끼 낀 검은 돌'을

손수건으로 감싸 주머니에 넣더니,

가차 없이 성냥불을 불어 껐습니다.


후-

다시, 완벽한 어둠.

빛이 사라지자 시각 대신 다른 감각들이 예리하게 곤두섰습니다.


"출구가 멀지 않았어.

지금부터는 서로의 옷자락을 놓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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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의 지시에 따라 알루스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루칸은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알루스의 등 뒤에 달린 가죽 끈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손끝에 닿은 그 가죽의 감촉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수없이 전장을 함께 누비며 등을 맞댔던 친구의 익숙한 등이건만,

지금 루칸의 손에 잡힌 것은

마치 '알루스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무언가'인 것만 같아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아니야, 알루스야. 내 친구 알루스라고.'

루칸은 고개를 저으며 그 의심을 떨쳐내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의심은 독버섯처럼 포자를 퍼뜨렸습니다.


앞서 걷는 알루스의 발소리가 미묘하게 박자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

가끔 들려오는 숨소리가 지나치게 고요하다는 생각.

어둠은 그 작은 의심들에 살을 덧붙여, 제멋대로 몸집을 불려 나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좁은 통로를 타고 어디선가 비릿하고 습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 속에는 오래된 물 냄새,

그러니까... '까마귀 둥지 아래 우물'에서 맡았던

그 썩은 먹물 같은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실려, 앞서가던 알루스의 목소리가

루칸의 귓가에 작게 흘러들어왔습니다.


"루칸..."

루칸은 움찔하며 잡고 있던 가죽 끈을 놓칠 뻔했습니다.

알루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루칸, 자네도 보았나?"

알루스의 목소리는 동굴처럼 낮고 울림이 없었습니다.


"아까 벽에 비친... 내 그림자 말이야."

루칸의 발이 바닥에 얼어붙었습니다.

숨이 턱 막혀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루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마치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습니다.

"그거... 정말 나였을까?"


루칸은 덜덜 떨리는 입술을 떼어 무어라 대답하려 했습니다.

"알루스, 지금 무슨..."


바로 그때였습니다.

"루칸!! 대답해!! 어디 있어!!"


머리 위, 얽히고설킨 나무뿌리 천장 너머...

방금 전 그들이 서 있던 낡은 풍차의 지하실 바닥을 뚫고,

너무나도 익숙하고 절박한 알루스의 고함 소리가 천둥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모두들 어디로 간 거야!

내 목소리 들려?!"


루칸의 심장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알루스라면...


방금 전, 내 귓가에 대고 "그거 정말 나였을까?"라고 속삭인...

내 바로 코앞에서 걷고 있는 이 자는..?

루칸은 마른침을 삼키며, 덜덜 떨리는 입술을 겨우 떼어냈습니다.

"당신... 알루스가 아니야."


어둠 속의 '그것'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습니다. 관절이 꺾이는 마찰음조차 없이,

부엉이의 둥근 머리통이 마치 잘 닦인 인형의 목처럼

소름 끼치도록 매끄럽게 180도 회전했습니다.


불빛 아래 드러난 알루스의 얼굴.

그 낯익은 얼굴이, 더 이상 친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단히 봉인된 부리는 차가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안경 너머의 두 눈은...

마치 누군가 붓으로 억지로 그려 넣은 조잡한 가면처럼,

소름 끼치는 반달 모양으로 깊게 휘어져 있었습니다.


"......"

그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위층에서 들려오는 '알루스'의 비명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루칸의 공포를 천천히 음미하고 있을 뿐.


"......"

그것의 입이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루칸의 머릿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듯한

끈적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찾... 았... 다."


어둠 속에서, 서늘한 초승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친구가 아닌 것의 입가에 걸린,

그 웃음이라는 이름의 기괴한 달이.

루칸의 눈동자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 '새벽을 삼킨 검은 날개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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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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