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늪에서 찾은 초록 심장
검은 늪 한가운데, 홀로 피어난 꽃은 마치
이 지하 세계의 유일한 녹색 심장처럼 보였습니다.
주변의 썩어가는 흙내음과 지독한 독기를
온몸으로 견뎌낸 탓일까요.
줄기는 숯처럼 검게 타들어 가 있었지만,
그 희생 덕분에
끝에 매달린 봉오리는 눈이 시릴 만큼
투명한 초록빛을 뿜어내고 있었지요.
벨라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슬펐습니다.
죽음 같은 늪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생명.
가장 진한 고통을 기꺼이 삼켜야
가장 짙은 빛을 낼 수 있다는 그 잔인한 역설이,
마치 벨라 자신의 운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걸... 꺾어도 되는 걸까.'
손을 뻗었지만, 차마 닿지 못했습니다.
이 지하의 어둠을 지탱하고 있는
단 하나의 촛불을 끄는 것만 같아서.
이 고요한 균형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빗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바르크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시간은
잿빛 비와 함께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그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미안해..."
벨라는 작게 속삭였습니다.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검은 줄기를 움켜쥐었습니다.
줄기가 끊어지는 소리는 작았지만,
그 울림은 벨라의 심장을 찢는 비명처럼 컸습니다.
그 소리와 동시에,
공생초의 심장 같던 그 눈부신 초록빛이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미의 탯줄이 끊긴 태아처럼,
검은 늪에서 떨어져 나온 꽃은
급격히 숨을 헐떡이며
빛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벨라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꽃을 감싸 안았지만,
꽃은 빠르게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잎사귀가 조금씩 바스러질 듯 말라가고 있었지요.
그 짧은 순간, 약초 전문가로서의 지식이
번개처럼 그녀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메마른 공기...!'
이 꽃은 평생 늪의 진흙 속에 파묻혀,
탁한 독기만을 호흡하며 살아온 존재.
마치 물 밖으로 나온 해파리가 햇볕에 녹아내리듯
뿌리와의 연결이 끊기는 순간, 이 꽃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메마른 공기에 닿으면 안 돼...!
계속 젖어 있게 해야 해...
늪을 대신할 끈적하고 습한 곳에 가둬두지 않으면!'
'밀폐해야 해... 습기와 온도가 유지되는,
공기가 차단된 곳...'
벨라는 급히 주머니를 뒤졌지만, 거친 마베 헝겊은
오히려 꽃의 남은 수분마저 빨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액체를 담을 유리병도, 밀폐할 상자도 없었습니다.
점점 바스러져 가는 꽃잎.
이대로라면 지상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꽃은 사라져 버릴 것이 뻔했습니다.
"늪의 숨결이 날아가지 않도록,
진흙과 함께 두 손으로 움켜쥔다면..?"
벨라는 고개를 들어
그녀가 내려온 통로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거의 수직으로 뻗은 미끄러운 나무뿌리와 이끼 벽.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해 거미처럼 매달려도
오르기 힘든 험난한 길.
두 손으로 꽃을 쥔다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길.
'어떻게... 대체 어떻게...'
'어디... 어디 없나?
이 꽃을 마르지 않게 품을 수 있는,
늪과 가장 비슷한 곳...'
그 순간, 벨라의 머리에 벼락처럼 스치는
단 하나의 해답.
그녀의 생각이 자신의 입술로 향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작은 늪'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따뜻하고, 항상 젖어 있으며,
메마른 공기를 차단해 줄 수 있는 밀실.
벨라의 몸에서 유일하게
이 꽃을 '늪'처럼 품어줄 수 있는 곳.
그녀의 입안.
하지만 그것은 독이
벨라의 몸속에도 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자칫하면 바르크를 살리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마비되어
저 절벽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벨라의 시선은 회색빛으로 시들어가는
꽃잎 끝에 머물렀습니다.
망설임은 사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은 증발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너의 화분이 되어줄게.'
벨라는 결심한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라가는 꽃을 입술 사이로 가져갔습니다.
두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이 작은 생명을
자신의 체온으로 지키기 위해.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위태롭게 깜빡이는 그 녹색의 불씨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찌릿—.
혀끝에 닿자마자, 수십 개의 미세한 바늘이
찌르는 듯한 아린 통증이 입안 전체로 퍼졌습니다.
입안 가득 고이는, 빛 한 점 없는 지하 동굴에
오랫동안 고여 있던 검은 늪.
텁텁하고, 무겁고,
영혼까지 가라앉게 만드는 지독한 쓴맛이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혀를 마비시키는 그 독기마저,
꽃이 내뿜는
마지막 숨결이라 여기며 참아냈습니다.
자신의 따스한 호흡으로,
자신의 침으로라도 이 꽃을 적셔
그 생명을 붙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녀는 이제 '운반자'가 아닌,
이 꽃이 숨 쉬는 '화분'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젖은 이끼 바닥을 박차고 위로,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벨라를 부드럽게 받아주었던 지하 숲이,
올라가려는 그녀에게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나무뿌리들은
마치 살아있는 뱀 떼처럼 얽혀
발 디딜 틈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축축한 이끼들은 기름을 바른 듯 미끄러웠고,
벨라가 손을 뻗을 때마다 차가운 점액질을 뱉어내며
그녀의 손을 밀어냈습니다.
마치 이 거대한 지하의 어둠이,
자신의 일부를
훔쳐가는 도둑을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읍...!"
미끄러진 벨라의 무릎이
날카로운 돌부리에 찍혔습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습니다.
입을 벌리면,
그 작은 희망이 날아가 버릴까 봐.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신음조차 삼켰습니다.
꽃이 머금은 차가운 진물이 침과 섞여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칠흑 같은 어둠이 한 방울씩
뱃속에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불길한 기운은 혈관을 타고
뱀처럼 스멀스멀 온몸으로 퍼져나가,
벨라의 의식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이 핑 돌며,
환각처럼 푸른 점들이 시야를 어지럽혔습니다.
'뱉어내... 뱉어내면 편해져...'
어둠 속에서 달콤한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저 아래 입을 벌린 평온한 검은 늪이,
마치 거대한 자석처럼 지친 그녀의 발목을
사정없이 잡아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자신의 입안에서
미약하게나마 '톡, 톡' 튀는 꽃의 맥박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르크의 심장 소리 같았지요.
꺼져가는, 그러나 아직은 뛰고 있는.
그녀는 진흙 투성이가 된 손톱을 세워
다시 나무뿌리를 찍어 눌렀습니다.
젖은 뿌리의 거친 껍질이
손톱 밑 여린 생살을 파고들며
찌릿한 비명을 질러댔지만,
벨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날카로운 통증만이,
독기에 취해 흐려지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아주는
유일한 '닻'이었으니까요.
저 위, 아득히 먼 곳에서
희미한 빗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잿빛 하늘이 쏟아내는 그 차가운 절망의 소리가,
지금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생명의 알람처럼 들렸습니다.
벨라의 뺨 위로 식은땀과 눈물,
그리고 빗물이 구분할 수 없이 뒤엉켜 흘러내렸습니다.
허공을 향해 뻗은 손끝에, 차가운 것이 닿았습니다.
'비'였습니다.
그토록 원망했던 잿빛 비가,
지금은 마치 구원의 밧줄처럼 그녀의 손을 적셨습니다.
벨라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땅 위로 몸을 던졌습니다.
입을 열면 안 돼.
비명은 목구멍 안에서 터져 나와
독기와 함께 맴돌았습니다.
눈앞이 온통 흐릿했습니다.
세상은 회색으로 물들었고,
쏟아지는 빗소리는 귀를 찢을 듯이 웅웅거렸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회색 풍경 속에서,
단 하나, 멈춰 있는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바르크.
그는 비에 젖은 채,
이미 흙으로 돌아가려는 듯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벨라는 기어갔습니다.
일어설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다리는
진흙 바닥을 질질 끌며 무거운 자국을 남겼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입안의 꽃은 점점 더 뜨거워지며
그녀의 혀를 마비시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세상에서 모든 풍경이 지워지고,
오직 그가 누운 자리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바르크의 창백한 얼굴 위로
벨라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그의 입술은 이미 죽음처럼 파랗게 식어 있었고,
빗물만이 그 굳게 닫힌 틈을
무심하게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벨라는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어,
그대로 무너지듯 그의 가슴 위로 쓰러졌습니다.
차가운 빗물과 뜨거운 숨결이 만나는 찰나,
나의 캄캄한 밤을 쏟아지는 빗줄기에 기꺼이 허물어
당신의 눈부신 아침을 열 수만 있다면.
내 안에 아리도록 품은 이 초록의 숲을,
이제 당신의 숨결 속으로 옮겨 심습니다.
(다음 편 '뒤틀린 미로의 그림자'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