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피어나는 중입니다

베란다 앞, 나를 닮은 나무에게

by 아르망

아파트 베란다 앞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나무 하나


겨울 한복판

아무도 곁을 지키지 않을 때


가지 끝

작은 봉오리 하나

등불처럼 매달아 두었다


모진 계절

휘감고 지나간 자리


누구보다 먼저

하늘을 마중 나가려


손끝에

시린 소망

조그맣게 켜두었던 시간


마음 끝자락

매달린

작은 숨 하나가


아무도 모르게

나를 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메마른 등

채찍질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비 내려와

이 마음

무겁게 적셔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하늘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빛은

내 곁에

더 오래 머물렀다


그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끝까지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


시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위에

조용히

아주 조용히


흰 눈처럼

켜켜이 쌓여만 간다


어느 봄날


꼭 쥐고 있던

주먹 같은 마음


깊은 데서부터

천천히 펴지니


빛이

가장 먼저

틈 사이로 스며든다


눈부신 아침

톡, 하고 터져 나온

순백의 외침


그렇게 내 안에

하얀 이름 하나

환하게

아주 환하게

피어난다


기다렸다는 말도 없이

견뎠다는 말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오늘도

나는


아직

피어나는 중이다



집 앞 목련이 유난히 하얗게 터져 나오던 아침이었습니다.

지난겨울,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던

그 앙상한 가지 끝에서 어떻게

이런 눈부신 빛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잎사귀 하나 없이,

오직 꽃봉오리 하나만을 꽉 껴안고 견뎌낸 겨울.

그 느리고 깊은 시간들이 있었기에

목련은 누구보다 먼저

하늘을 마중 나가려 했겠지요.


모든 것이 다 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가지는 아직 단단히 닫혀 있었고,
어떤 끝은 이제 막 자신을

조금씩 열어 보이고 있었습니다.


다 피어나지 못해도
작은 소망 붙잡고 있는 마음,
나아가기 위해 조금 더 견디고 있는 시간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피어나는 일보다 먼저,
각자 지켜내고 이겨내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오늘도 어딘가에서 아직 열리지 않은 채

조용히 빛을 받고 있을 누군가의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비록 겉으로는 멈춰 있는 듯 보일지라도,

그 시린 침묵을 견디고 있는

모든 시간은

이미

가장 눈부신 단 하나의 꽃이었습니다.





이전 07화달빛은 눈처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