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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온 May 24. 2024

별다방 미쓰리, 출근을 부탁해

오늘을 견디는 쌉싸름한 커피 연대


"커피 주문하세요! 뜨아인가요? 아아 인가요?".


카페인 요정을 자처했다. 더 눕고 싶지만 커피 배달하러 몸을 일으킨다. 내 손에 누군가의 아침이, 하루가 달려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동료를 외면할 수 없고, 출근은 싫지만 커피는 전해야 한다. 울지 않고 어린이집 다녀오겠다는 세 살짜리 다짐처럼 비장한 선전 포고. 물러서지 않고 출근하겠다는 각오이며, 회사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메시지이다. 출근한 자여, 걱정 말라! 메마른 목에 아메리카노를 부어 줄 테니, 카페인이 너희를 일하게 하리라. 아직 이불 속인 자여, 궐기하라! 일 간다 생각하지 말고, 커피 마신다 생각하고 나오시라.


아침마다 카페인 당번은 자발적으로 돌아간다. 누군가 커피를 사겠다는 카톡이 모닝콜이다. 눈을 반쯤 뜨고 뭐 마실까 생각하며 뇌를 깨운다. 됐다. 이제 출근할 명분이 생겼다. 이불을 걷어차고 슬슬 몸을 일으켜 본다. '도살장 끌려가는 거 아니고, 올데이 티타임하러 가는 거야’ 애써 자위한다. 사장님 비서마냥 커피를 대령해 놓는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다. 급여일은 멀고 월급은 스쳐 지나가서 동기가 약하다. 당장 회사 가기 죽도록 싫은 날은 커피가 약이다. ‘출근 싫어 병’에 직방인 명약.


지하철에서 내리기 두 정거장 전, 커피를 오더 한다. 아아인지 뜨아인지, 톨인지 벤티인지 택하고 샷, 시럽 추가에 사이즈 업, 무료 음료 쿠폰도 먹여주고 마지막으로 기프티콘까지 적용하면 스마트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똑띠 주문한 나 자신을 토닥토닥 칭찬해. 내돈내산인데 공짜 커피처럼 횡재한 기분에 텐션이 오른다. 자질구레 구구절절한 요구 사항을 파트너에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진상 고객으로 몰리고 뒷사람 눈치까지 보여 진땀 났겠지. 파트너는 복잡한 주문에 멘붕이 왔을지 모른다. 비대면 오더가 일자리를 줄여서 아쉽지만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면이었다면 미안해서 하지 못했을 옵션 추가를 마음껏 하고 하고 난 뒤의 개운함이라니.


다섯 번째로 준비 중이라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지하철에서 내려가다가 픽업하면 맞겠네. 점사를 맞춘 사람처럼 타이밍이 딱딱 맞아 기분이 좋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커피가 준비됐다는 푸시가 온다. 한 잔의 위로나 위안이 필요한 닉네임들로 가득한 스벅 LED. 내 이름 옆에 준비 완료라고 떠 있고 커피는 캐리어에 담겨 있다. 딱딱 맞춰 시계 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갈 것 같은 하루를 예감한다. 예감은 예감일 뿐이지만 조짐이라도 좋은 게 어딘가.   


'하라온님 맞으시죠? 맛있게 드세요.’ 파트너의 톤 높은 목소리가 활기차다. 저 한 마디 듣기 위해 커피를 주문한 사람처럼, 오늘을 무사히 잘 보낼 것이란 예언처럼 의미를 부여한다. 남의 감정 노동으로 나의 노동 욕구를 북돋우는 아이러니. 호명과 인사에서 작은 에너지라도 받겠다는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스타벅스가 진동벨을 쓰지 않는가 보다. 고객과 아이 컨택, 커뮤니케이션하려는 목적이라는 데 기분 좋은 걸 보니 틀림없는 것 같다. 손에 들린 캐리어는 동료까지 챙기는 마음 넓은 사람, 티타임 친구가 있는 사람, 강력한 부스터가 필요한 사람임을 만방에 보여준다. 그래 나 이런 사람이야, 어깨가 으쓱 올라가며 빨리 회사에 도착하고 싶은 별다방 매직이다. 


지체 없이 픽업해서 가던 길로 직행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부터 기다림은 시간 낭비, 바보 같은 짓이 되었을까. 손가락만 까딱하면 바로 되는 세상에 스마트 오더는 시간을 분초로 쪼개서 쓰는 사람에게 필수가 되었다. 자율 출근제로 1분 1초라도 벌어야 하는 시간 감옥에 갇힌 직장인에게 이리도 요긴할 수가 없다. 어쩌다 모바일 오더까지 했는데 주문이 밀려서 기다리게 된다면 어찌나 억울한 마음이 드는지 없었을 때도 잘만 살았는데 참으로 간사하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을 동료의 책상에 한 컵의 용기, 응원, 행운, 긍정을 내려놓는다. 소소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과시하고 자리에 앉았다. 동료의 눈빛에서 이미 영웅급의 대우가 느껴진다. 내 책상 한편에는 과자, 빵, 떡, 견과, 주스, 김밥, 나의 안위를 소망하는 부적들이 가득이다. 볏짚을 나르는 의좋은 형제처럼 분명 나누었는데 돌아와 있다. 공사 현장의 '안전제일'이라 쓰인 안전모를 쓰듯 스스로를 지키겠다며 카페인과 양식으로 심신을 중무장해 본다. 메신저로 양식의 출처를 확인하고 서로 고맙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한 입 베어 물고 오늘의 영업을 힘차게 개시.


상사에게 혼났을 때, 온종일 만든 데이터가 날아갔을 때,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때, 해도 해도 일이 줄지 않을 때, 막말을 들었을 때, 실수해서 자책이 될 때, 동료보다 고과가 낮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시고 씹고 뜯는다. 재난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기에 커피 한 잔은 보험과 같다. 들이키며 밥벌이의 지난함을 삼키듯 흘려보내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을 시작한다. 노동자에게 생명수 같은 귀중한 존재이니, 이 한 잔을 하사한 동료는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 동료에게 기쁨을 준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커피 나르는 수고쯤이야 얼마든지 하고 싶다.


서울 모닝 클럽의 팔로워가 6,729 명을 돌파했다. 서울 모닝 클럽은 근무 지역이 가까운 사람들과 출근 전에 티타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커뮤니티이다. 회사 가기 전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혀 줄 차 한 잔과 가벼운 담소를 나눈다고 한다. 월급은 간절하지만 출근은 멀리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런 커피 연대를 권하고 싶다. 소소한 커피 계모임을 만들어도 좋다. 미라클 모닝과 정서적 소속감은 덤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거창한 모임이 아니더라도 내일 눈을 뜨자마자 ‘커피 드실 분?’이라고 카톡에 크게 외치면 된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카페인 한 잔 때문에 간절하게 회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궁금하다면 내일 커피 당번은 할 사람, 단톡방에 손 번쩍 들고 소리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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