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불편한 편의점'에서 편의점은 업무와 상황과 JS가 적당히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소위 블랙 리스트라는 진상 손님을 JS라고 부르는데, 편의점 일에서 JS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편의점 일에 빠삭한 선임 알바생 시현도 JS만 나타나면 긴장을 늦추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어떤 트집을 잡아서 들들 볶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왜 원플러스 원 이벤트가 안 되냐, 안 되면 고지는 미리 왜 안 했냐, 내가 피우는 담배를 알아서 달라, 그 담배를 못 찾으면 단골인데 그것도 모르냐 폭언에 가까운 면박이 이어진다. 알바생이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틈을 보이면 이때다 발톱을 보이는 맹수처럼 파고든다. 그 덫에 걸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차려 보지만, 긴장할수록 실수가 생기고 JS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온다. 시현은 JS란 자기는 마음껏 진상 짓을 떨면서 남의 실수 같지 않은 실수는 따져대는 놈이라고 정의한다.
불편한 편의점의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챕터는 직장인의 공감대가 크다. 일개 알바생의 에피소드지만 회사나 조직에서도 JS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시현이나 독고처럼 JS에 대항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수시로 맞기 때문이다. 현실은 JRJS(지랄진상)까지 더 높은 레벨의 진상이 존재한다. 편의점의 JS는 손님으로 순간의 응대로 끝나지만, 조직에서 그들 대부분은 권력을 가진 상사에 포진되어 있으며, 하루의 일과를 함께 보내며 업무를 같이 해야 하기에 고충이 크다. 업무 평가자와 피평가자로서 갑-을 관계에 있기 때문에 맞설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일로 힘든 건 일로 해결이 되지만, 사람한테 힘든 건 약도 없다. JRJS가 직속 상사라면 시집살이도 이런 시집살이가 없을 정도이다.
직장 내 JRJS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흔한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근태에 집착 하는 JRJS이다. 업무의 과정이나 성과보다도 눈에 보이는 근태를 문제 삼아서 쪼는 식이다. 왜 늦게 오냐, 왜 일찍 가냐, 왜 휴가를 (길게 붙여)쓰냐,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다가 잔소리를 늘어 놓는 식이다. 취조하듯이 사생활을 캐내야 속이 풀리는 타입으로 회사가 아무리 유연근무제, 자율출근제를 내세워도 라떼 기준에 맞춰서 근무하기를 바란다. 자리에 누가 있나 없나 즉 '머릿 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외근이나 티타임도 편히 하기가 어렵고 눈치를 봐야 한다. 업무 다 하고 남는 시간에 휴가를 가고 휴식 시간을 가져도, 회사 기준에서 아무 문제가 없지만 JRJS에게 큰 일 날 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불성실한 자가 되어 버린다. 집안의 어떤 경조사로 휴가를 내야 하는지, 언제 누구와 어디로 휴가를 가야 하는지 꼬치꼬치 물어대기 때문에 휴가를 안 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며, 이것이 그들의 전략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일찍 와서 늦게 가는 팀원을 칭찬하며, 퇴근할 때 인사하고 가라며 은근한 눈치로 야근까지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근무 시간=업무 성과로 보기 때문에 근태의 틈을 보이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좋은 고과를 기대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정상에 다 가서야 '이 산이 아닌가벼'하며 업무 방향을 틀어 버리는 JRJS가 있다. 프로젝트 마무리가 될 때쯤에 또 다른 컨셉트를 제안하며 그 동안 해 왔던 것들을 삽질로 만들어 버린다. 일이 끝날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A-1, A-2, A-3의 보고서로 끝나는게 아니라, 결국 A, B, C, D, E의 전혀 다른 버전을 생산하게 만든다. 결단력이 없거나, 책임지기 싫거나, 임원들의 눈치를 심하게 보거나, 팀원들의 노고는 안중에 없는 리더들이다. 남의 공든 탑이 무너지든 말든 '하라면 해'로 일축시키며, 팀원들의 업무 의욕과 동기 부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열심히 만들어 봤자 보고서가 언제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데 누가 열과 성을 다한단 말인가.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하고자 하는 게 뭔지 자기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무의 목적과 방향이 모호해서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통'이 리더의 덕목 중에 하나인데, 이 분들은 상사와도 팀원들과도 소통을 하지 않거나,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단합이라는 허울 아래 수시로 회식을 강요하는 JRJS도 있다. 단합이라는 것이 꼭 밥이나 술을 같이 먹어야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분들의 개념은 적어도 그렇기 때문에 '헤쳐 모여'를 수시로 강요한다. 언제 어디서는 거의 답정너인 경우가 많아서 이런 자리에 유쾌하기 가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의견은 물어 보지만 그들이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서 시켜주는 메뉴를 같이 먹어 드려야 하는 고충이 있다. 메뉴도 '맛있는 거 먹어. 난 짜장면' 이런 식이다. 불참할 수 있는 자유는 애초에 없고, 메뉴 선택권 조차 없기 때문에 체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면서 본인이 쏜 것처럼 생색은 덤이다. 여기에 식사 시간 내내 이어지는 업무 이야기는 급체를 부르기도 한다. 이 꼬라지를 회식 정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몇 날 몇 일을 봐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회식이란 말인가.
시현은 아르바이트하는 직종마다 JS 대응 매뉴얼이 있었다고 하며, 독고에게 JS를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직장인이라면 시현처럼 나만의 JSJR 대처법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근태에 목숨 거는 상사에게는 적당히 일찍 오고, 적당히 야근하고, 휴가도 나눠 쓰고 성실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준다. 내 휴가, 내 근무 시간인데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나 회의는 들지만, 찍혀서 돌아올 후환을 피하고자 빈 자리의 공백을 최소화한다. 업무 방향을 수시로 바꾸는 상사는 사실 답이 없다. 에너지와 체력을 분산해서 쓰면서 업무가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표정 관리나 잘 하는 수밖에 없다. 한 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나 들이키면서 빠른 기분 전환이 그나마 도움이 된다. 중국집처럼 뻔한 회식 자리는 그분과 최대한 먼 자리를 사수하면서 수다라도 떨다 오면 다행이다. 메인 메뉴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면 사이드 메뉴라도 하나 더 슬쩍 시키면서 소심한 복수도 추가해 본다.
JRJS이 무서워서 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더러워서, 걸리면 피곤해서 피하고 볼 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은 JRJS에게 해당 사항이 없다. 어느 누구도 무례하고, 개념 없고, 제 멋대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JRJS을 웃으면서 감당하기 어려울테니 말이다. 업무 지시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JRJS짓을 감내하는 비용까지 연봉에 포함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조직이 개편되면 헤어질 수 있다고 희망 고문을 해 본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일하는 고충도 큰데, 사람에 대한 고충까지 주는 빌런은 되지 말자고, 최소한 누군가가 나 때문에 출근하기 싫다는 말은 나오게 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동료로서 입은 닫고 더 들어 볼 용의를 퇴사할 때까지 충분히 장전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