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말하지 않는 아이'
나를 보면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말.
내 첫 기억은 내가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다.
내성적인 성격이 강해서 그런 건지,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내가 일곱 살 때 같이 놀던 유치원 친구들이 여섯 살 때 내 담당이었던 선생님께 내가 이제 말을 한다고 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을 다시 떠오르면 일곱 살 전부터도 나는 조용했다는 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예 말을 하지 않았던 아이, 그게 나였다.
말수가 없는 내가 걱정되셨는지 부모님께선 외부의 놀이상담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밖에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게 일상의 대부분이었다.
놀이상담에 갔을 때 선생님은 나의 모습을 투영해 밖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 역할을 맡았던 선생님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잖아요."라고 위로했다.
아마 나는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았다.
"유치원을 한번 그려볼까?"
한 번은 선생님께서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내 앞에 두고 내가 다니는 유치원을 그려보자고 하셨고, 그때 내가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말씀대로면 난 조금 이상한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너 어렸을 때? 그때 놀이상담 때 유치원에 커다 란 자물쇠를 건 그림을 그렸다고 했더라. 선생님께서 웬만한 아이들은 상담을 두세 번 하면 대략 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너는 열 번이나 상담을 같이 해도 알 수 없다고 했어."
친구들이 많은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과 함께 있는 놀이상담실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아이.
어린이집에서는 혼자 있는 채 빨리 집에 갈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어느 쪽에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것 때문인지 나는 혼자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일찍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 가면 밖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밖에서 말을 하려고 하면 목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말을 하려고만 하면 무서워지곤 했다. 그리고, 이 증상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말 못 하는 아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나는 말을 하는 대신,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사람들은 그것까지 더 깊게 바라보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부끄러워서 못하는 거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깐"
속상하지만 이 말이 아마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어른들은 색안경을 낀 채 조금만 더 깊게 바라볼 생각도 하지 않고 겉모습으로만 나를 판단해 간단하게 결정지었다. 집과 밖에서의 모습이 달라서 그런 건지 부모님께선 예전부터 "집에서만 말은 잘하지, 밖에서도 좀 말하고 다녀."라는 말을 하셨다.
오래 들어서 그런 건지, 지금도 가끔 기억이 난다. 밖에서 말 좀 하고 다니라고, 다른 친구들은 다 어울려 노는데 나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사회도, 가족도 전부 내향인을 외향적으로 살아가라고 강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