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밖에서의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너무 작아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명찰 문제로 같은 반 친구가 조사차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 과거가 있었다. 명찰의 의미가 기억나지 않아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중 옆에서 지나가는 같은 반 남자애가 '애는 말 안 해.'라고 친구에게 알려주었다.
나름 마음을 써준 거겠지만 그래도 그날 밤 많은 생각을 했다. 친구들에게 나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로 기억에 남아 버린 거구나, 씁쓸했다.
크게 말해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 초등학생 수업에서 글이라도 읽어야 할 때마다 늘 나에게는 교육용 마이크가 달렸고, '말을 조금만 더 크게 해 줘.'라는 선생님의 지적이 달렸다. 밖에서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평소처럼 말도 잘하고, 목소리도 잘 들렸는데 집 밖에서 하는 말은 나도 잘 듣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
그래서 수행평가로 발표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잠깐 마음을 놓으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빨라져 가고, 작아져 가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과 대화하는 게 조금 어색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들어주는 대신 말을 하지 않았기에 상대방과 대화하면 할수록 말이 엉망이 되어갔고, 빨리 이 상황을 끝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말하는 게 빨라졌다. 상대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고등학생인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가 보다. 이제 초등학생 때 사용한 마이크 없이 다른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커진 줄 알았는데 가끔 토론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내 말이 잘 안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많았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가족들. 누구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다물지 않았고, 목소리가 작은 걸 신경 쓰고 우울해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작아도 괜찮고,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