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예술을 평가해서 상을 준다?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by 나승철

예술을 평가해서 번듯한 상을 주는 영역은 문학밖에 없을 듯하다. '노벨 문학상'에 관한 내용이다. 노벨 문학상은 작가의 업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주는 상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작품이 훌륭하지 않으면 작가의 업적이란 게 뭐가 있겠나? 작가의 작품은 그저 그렇거나 형편없는데 문단을 위해 혹은 세상을 위해 작가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고 해서 문학상을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작가는 글로 세상을 표현한다. 작가는 곧 그의 작품인 셈이다. 등단이나 입문 성격이 아닌 이미 '일가'를 이루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 세계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1등'을 뽑는다는 게 가당치 않다. 작가마다 예술 표현의 가치가 모두 다른데 어떤 기준이나 근거로 한 해의 '최고'를 뽑는단 말인가?


같은 예술 영역인 음악이나 미술에도 상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상은 대개 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발 성격의 상이다. 본격적인 예술 영역으로 들어와 예술가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평가이고 심사다. '등용문'을 통과하는 신인은 비로소 자신만의 예술을 펼칠 자격을 얻었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미 예술 무대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예술가를 대상으로는 평가해서 상을 주지는 않는다. 각자의 개성에 따른 성취의 가치가 모두 다른 탓이다. 자기만의 예술적 성취를 보이는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일괄적이며 획일적인 평가를 통해 등수를 매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대중적이고 유명한 예술가라 하더라도 다양한 성취와 결과를 낳는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개성을 지녔듯, 성숙한 예술은 그 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세상과 사물과 현상을 표현한다. 예술을 펼치는 환경이나 조건 또는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미국의 문명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루이스 멈퍼드는 자신의 책 '예술과 기술'에서, 예술은 인간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으로써 인간성의 영역을 확장하며 공감과 감정이입을 통해 자기 삶의 본질적 경험을 영구화하고 부활시키며 타인과 나눌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수단을 발전시킨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고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결합하고 미래에 생겨날 이상적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이 예술이고, 지극히 사소하고 모방적인 형태를 제외한다면 예술은 삶의 대용물이나 도피처가 아니며 다른 방법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의미 있는 충동과 가치의 표현이라고도 말한다. 자폐적이고 유아기적인 자기 동일시 단계는 예술의 첫 번째 단계이며, 단순한 주목보다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무엇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기 과시가 상호 소통으로 나아가는 단계는 두 번째, 개인이나 공동체의 직접적 요구를 초월하여 삶의 새로운 형식을 낳는 단계는 예술의 마지막 단계라고 주장하는 멈퍼드는, 예술가를 대우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광적인 폭력이나 공허한 자기 파괴만을 일삼을 것이고, 인간의 자기 인식과 자아실현의 궁극적 방법은 예술이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으로서의 목적과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예술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삶의 목적과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로봇과 다를 바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예술은 인류가 지속하는 한 반드시 함께해야 할 그 무엇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너무도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환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동시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예술을 어떤 기준을 두고 평가하여 우월해 보이는 지위를 점하는 대상에 상을 준다는 게 영 꺼림칙하다. 진정한 예술에 우위가 어디 있겠는가.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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