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 출산을 못하겠다

약한 엄마는 어디에도 없을까

by 엄마는두번째이름

여느 때와 다를 것도 없어 보였던 아침.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눈을 연신 비벼대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엄마 한 시간 뒤면 도착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었던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마저 받았다면 이건 내 착각인 걸까.


그렇다.

이 날은 나의 출산 전날이었다.


산모로서의 나의 생활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의 만삭으로 인해 나를 괴롭히던 통증과 고통이 끝이 보인다는 점이 두려움에 떨던 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생애 첫 수술, 그리고 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 아기를 만난다는 점에서 나의 마음은 열 달을 준비해도 절대 준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수술을 일주일 앞둔 때부터 나의 긴장은 극에 달아 밤을 꼬박 지새우는 일이 잦았 내 예민함은 입원 전날 밤,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뒤척이다가 겨우 잠시 눈을 붙였는데

잠시 뒤 받은 전화가 출산에 앞서 입원을 도와주러 온 엄마의 전화라니.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니.


열 달 내내 걱정에 매몰된 나였지만 출산을 앞두고는 그래도 의연할 줄 알았다.

흔히들 엄마는 강하다고 지 않는가.

아직 예비 엄마지만 제법 엄마 같아진 나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엄마의 전화를 받은 순간. 꿈속을 거니는 마냥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기 시작했다.


'이대로 수술을 못 받을 것 같아. 도망가고 싶다.'



임신은 그와 나의 선택이었지만 임신 이후의 출산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산모가 고대하였든 고대하지 않았든 출산의 순간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이성이 마비된 나는 그 순간 머릿속으로 도망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사이 엄마는 집에 도착해서 딸의 출산 가방을 차에 싣고 있었다. 입원 수속을 하려면 늦지 않아야 한다며 재촉하는 엄마 쪽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열 달 내내 부모가 된 기쁨을 함께 누리며, 임산부 아내의 이 되어주던 그의 얼굴이.

손주 탄생의 기대감, 한편으로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기뻐하기만 할 수도, 근심하기만 할 수도 없었던 복잡했던 부모님의 얼굴.

그리고 꿈속에서까지 몇 번을 만나며 수십 번씩 상상했던 아기의 얼굴이.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내일 예정된 수술을, 험난할 것 같은 첫 출산 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충동적으로 휴대폰만 손에 들고 집 밖을 뛰쳐나왔다.

마치 집을 가출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뛰는 것도 잘 되지 않는 만삭의 몸으로 뛰쳐나가 바로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나는 연신 집 앞 공원을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티비 속 출산을 앞둔 산모들은 아기를 만날 생각에 설레어 보였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은 설렘은 찾아볼 수도 없고 긴장만 가득했다.


'이런 내가 정말 엄마가 맞는 걸까?'

'내가 정말 엄마 자격이 있는 걸까?'

스스로 자괴감마저 들었다.


진정시켜 보려는 내 노력에도

마음속 파동은 점 커지기만 하였다.

오늘 도저히 입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던 찰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하며 세상 어디에도 부끄러워 내놓지 못할 만큼 약해진 마음을 드러냈다.

내 말을 묵묵히 듣던 그는 그는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담담하지만 나름대로의 위로와 응원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내 선택이라는 열린 결말과 같은 말과 함께.


따뜻하진 않지만 정 없지는 않은, 내가 익숙했던 그만의 위로법임을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혼자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순간 덜덜 떨던 입술이 굳게 다문 입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열 달 내내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내 모든 가까웠던 사람들이 조명 밖으로 사라지며 결국 아기와 나만이 남았다.

이제 오롯이 우리 둘이서 해나가야 할 일임을 알았다.

결국 내 몫임을.


처음으로 임신을 알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기다렸던 순간임에도 아직 미성숙한 내가 정말 엄마가 될 수 있는지 한없이 작아져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며 스스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열 달 내내 마음을 다잡았 나였다.


그리고 현재,

지금이야말로 그 어떤 순간보다 가장 용기를 내야 때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 날 내가 내었던 용기는 앞으로 아기를 키우며 져야 할 엄마로서의 단단한 마음의 첫 시작이 것임을 직감했다.


그렇게 나는 날 기다리고 있던 엄마에게로 향했고

입원 수속을 마쳤다.



그렇게 걱정으로 얼룩진 하루가 지나고

어느새 입원실에서의 밤 깊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엄마가 말을 건넸다.


"엄마 되기 참 힘들지?"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나를 봐왔던,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괜히 말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런 내게 엄마는


"이렇게 엄마 되는 게 힘드니까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기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우리 딸, 내일 잘할 수 있을 거야. "


지난 삼십몇년간 나를 키워온 나의 엄마와

내일이면 엄마가 되는 내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말에 새어 나오는 울음을 참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녀는 알았을까.


그 말이 지난 수십 년간의 엄마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단 걸 그녀는 알을까.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만나게 되어서 아기가 귀하게 느껴지는 걸까.

너무나 귀한 존재라 그렇게 힘들게 만날 수밖에 없는 걸까.


결론은 둘 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러했기에 누군가에게 평생동안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왔던 건 아닐까.


다음 날

벌레 잡는 것도 무서워하던 내가,

얼굴의 조그만 생채기에도 하루종일 신경쓰기 바빴던 내가,

멀쩡한 정신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열 달이란 시간 끝이자,

이 아이와 함께 할 수많은 날들의 음이었다.


수술실에서의 나는 더 이상 내가 걱정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으로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가야, 어서 오렴.

엄마랑 건강하게 만나자.

제발.."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

그렇지만 가장 고대했던 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 생명의 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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