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아빠, 병원을 박차고 나오다

육아를 하려면 퇴사를 할 수밖에 없나요?

by 엄마는두번째이름

어느 날, 남편인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 병원 관둘까?"


직장인으로서 인사치레처럼 매일 하는 소리였지만, 그날따라 다르게 느껴졌던 걸 보니 이건 역시 그의 진심이 꽤나 와닿아서였던걸까.


농담처럼 그렇게 하라고 받아쳤지만 그의 시선은 곧장 만삭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부른 내 배를 해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농담이 아니고 진짜야."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을 본 순간 나는 이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곧 태어날 아기방을 꾸미는데 진심이었던 시기였고, 한편으로는 그가 없는 내 마음의 방을 준비하는데 나 스스로 여념이 없던 시기기도 했다.


나와 같은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병원에서 일하던 그는 단 한순간도 마음 편하게 쉬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데이트를 하던 때도 카페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그의 상황은 결혼 후가 되어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와의 사이에서 아기를 가지기로 결심했던 나는 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되놰었지만,

나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출산이라는 세계.

육아라는 거대한 세계 앞에서 한없이 자신 없어지고 작아고 있었다.


그런 나의 불안감이 우리를 조금씩 잠식해 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실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하필이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아기의 출산과 이 세상에서의 아기의 첫 해, 그 시기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우리만치 바쁜 시기가 맞물리게 된 것이다.


런 탓에 더 이상 그의 바쁨은 우리 둘의 힘듦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기의 탄생으로 인해 그의 바쁨은 리 모두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다.


그의 힘듦은 곧 갓 태어난 아기의 배냇짓을 볼 수 없음을.

배냇짓이 아빠를 알아보고 방긋 웃는 미소가 될 때 이를 알 수 없음을.

조금씩 옹알이를 할 때 직접 들을 수 없음을.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말할 때 그 순간을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출처 <a href="https://kr.freepik.com/free-vector/flat-stages-of-a-cute-baby-girl-collection_14666553.h



그 사실이 곧 아빠가 되는 그에게도 꽤나 무거운,

무서운 미로 다가온 것이다.

자신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빠가 되는데, 아기가 자신의 얼굴을 모를 만큼 바쁘고 싶지는 않다고.

그 시기를 사진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고,

꽤나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홀로 해내야 하는 육아에 대한 불안감은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사실 난 무엇보다 병원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사람이 그 날갯짓을 멈추고 내 곁에 있는 것은 욕심이라고 여겼다.


엄마로서의 나는 이미 임신을 했을 때부터 몇 년간의 경력 손실은 예상하고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먹었던 터였다.


그런데 나의 남편까지 아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직장에서 퇴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편에게는 육아 휴직 제도자체가 없었고, 퇴사하는 길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머릿속으로는 자연에서 새끼를 품은 어미가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매듯,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불완전한 상황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날로 치솟는 집값 탓에 아직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우리였다. 그런 우리에게 두 사람 모두 휴직과 퇴사를 한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무모함으로 보였다.

아기의 분유, 기저귀 값만 해도 얼마인가.


퇴사라는 남편의 폭탄선언이 얼떨결에 유야무야 된 후, 우리는 주말을 맞이해서 오랜만의 밤 산책에 나섰다.

뱃속의 아기와 함께한 부부의 외출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를 사서 집 근처를 손잡고 산책했을 뿐인데 그 순간


' 아,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라는 찰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원한 것은 값비싼 아기 침대도, 멋들어진 집도 아닌 남편과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거니는 것 아닐까?


그 순간 나는 부부였던 우리가 부모로서 함께 하는 일 년 남짓한 시간은 어쩌면 평생에 걸쳐 보았을 때 단순한 일 년,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남편도, 친정도, 시댁 그 누구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나와 아이만이 해나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의연한 척했지만 사실은 나 역시 무척이나 두려웠음을,

그리고 절실하리만큼 아빠의 자리를 원한다는 것을. 뱃속의 아이 역시도 아빠가 필요함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도록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퇴사를 알리고 오겠다며 그의 오랜 직장으로, 그가 몸담았던 병원으로 출근했다.


이상하리만큼 시간이 느리게 갔던 하루가 지나고 그가 한껏 상기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보, 앞으로 일 년 동안 둘이서 아기 잘 키워보자."




그렇게 우리는 함께 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퇴사 후 함께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에서 부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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