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미건조한 출산도 있다니

보통의, 그러나 보통과 달랐던 출산 이야기

by 엄마는두번째이름

출산이라 하면 흔히들 산모가 힘겨운 산고를 겪는 모습을 떠올린다.


꽤나 오랜 시간의 고통스러운 진통을 산모가 겪어내고 그 옆에서 남편은 손을 잡아주며 몸 둘 바 몰라하는 모습이 흔히들 아는 모습일 것이다.


내가 임신기간 내내 그려왔던 출산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나의 출산은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출산의 시작부터 애초에 달랐다. 갑작스러운 진통이 아닌 예정된 수술 스케줄에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진통을 신호탄 삼아 진행되는 보통의 출산과는 달리 상의된 날짜는 병원과의 조율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는 하루하루 지나는 날짜를 보며 카운트다운을 보는 듯 초조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꽤나 넉넉하게 남았다고 생각되었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수술 전 날이 되었다.


나는 10개월을 기다렸던 아기가 다음 날이면 태어난다는 설레면서도 걱정스러운 오묘한 느낌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내일을 기점으로 앞으로 나의 모든 일상은 격변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뒤척이면서 아기의 얼굴을 상상하고 첫 만남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겨우 잠에 들었다.




드디어 수술 당일, 차디찬 수술대에 누워서 눈을 감는 것을 시작으로 수술은 시작되었다.


마취제를 맞는 것까지는 보았는데 그 이후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1부터 세어보는 장면은 아예 없었다.

그저 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있고 그 이후는 내게 암흑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게 끝나있었다.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고 배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취 기운에 그저 계속 졸리다는 생각뿐.


그리고 입원실로 돌아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침대 옆에 작은 바구니가 들어와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마취 기운에 비몽사몽한 나에게 아기가 건강하다고 말씀하시며 아기를 안아보게 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작은 생명체.


영화에서 보면 엄마들은 "아기야, 반가워" 같은 말을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곤 하던데

내가 처음 든 생각은 놀랍게도



'이렇게 작은 모자도 있구나'였다.



너무나 조그마해서 맞는 모자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작은 존재가 자기랑 꼭 맞는 작은 모자를 쓰고 눈을 감고 누워있다.


이 아기가 내 뱃속에서 나와 10개월을 함께 보낸 나의 아기란 말인가.


처음 느껴보는 오묘한 감정이었다.


내 옆에는 하루 만에 예비아빠에서 아빠가 된 그가 어색한 표정을 하고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서 아기를 받아 들고는 서툴지만 소중하게 안으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낯선 이 상황에 굳이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후로 고생했다는 축하 인사를 받고 아기의 사진을 찍으며 누구를 닮았는지 차근차근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정도의 이질적인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다.


훗날 돌이켜보니 이때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다.


방금 출산한 산모라고 하기에는 떨떠름하고 당황스러워하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랄까.


임신 기간 내내 기다렸던, 상상했던 이 순간은 나의 생각만큼 감격스럽기만 한 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날은 앞으로 평생 지켜야 하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을,

그 존재가 얼마나 작고 가냘픈지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부담감과 책임감에 압도당하는 오묘하고 이질적인 기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엄마라는 무게에 압도당하는 느낌.




그리고 이때까지는 몰랐다.


무미건조하게 받아 들었던 그 작은 존재를

이토록 사랑하게 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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