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를 혼내듯 말했었다. 엄마는 장미를 꺾지 않았었다. 내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사람들 없을 때 꺾으려고 했는데 내내 사람들이 있었는지, 막상 꺾자니 장미가 너무 예뻤는지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아니면, 그냥 엄마가 탐스럽게 핀 장미가 너무 예뻐서 한 말에 내가 과잉반응을 보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춘천으로 1박 2일 일정을 가야해서 집 안을 정리하고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아파트 울타리에 핀 장미를 보자,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봤으면 너무 예쁘다고 다시 탄성을 내지를 만큼 장미는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장미는 다시 폈다.
엄마는 영산홍도 좋아했었다. 빨간 개양귀비꽃도 좋아했었다. 화려하고 붉은 꽃을 유독 좋아하셨던 거 같다.
하지만화려하고 붉은 꽃 말고도 꽃 자체를 좋아해서 코로나 전에는 고양 꽃 박람회가 열리면 꼭 친구분들과 함께 가고는 했었다. 갔다 와서는
"꽃들이 너무 예뻐~"
했었다. 간혹 언니가 꽃바구니 선물을 받아오면,
"돈으로 주지."
라고 말은 하면서도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한참을 보곤 했었다.
어버이날에도
"돈 아깝게 꽃은 무슨."
이라고 했었지만, 꽃을 받으면 역시 잘 보이는 곳에 달아놓았었다.
엄마가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난
"돈 아깝게 꽃은 무슨."
이라는 엄마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아니, 나의 짠돌이 습성이, 나의 게으름이, 엄마의 거짓말을 믿고 싶어 한 것이다. 엄마한테 꽃을 사다 드려야지 하면서도 막상 돈이 조금 더 아까웠었고, 꽃집을 찾아야 하는 것이 귀찮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안치단에 꽃을 달아드리면서 생전에 꽃을 사 드리지 못했던 것을 내내 후회 중이다.
탐스럽게 핀 장미를 보자, 죄책감이 다시 내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난 집을 자주 비웠다.
집에 일찍, 그리고 꼭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집에서도 혼자, 밖에서도 혼자이니, 굳이.
춘천1박 2일의 일정도 굳이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되었다. 용산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만에 춘천에 갈 수 있으니, 굳이 짐을 싸고 숙박비를 써가면서 춘천에서 잘 필요는 없었지만, 역시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없어서 숙박을 잡고 무겁게 짐을 챙겨서 춘천으로 갔다.
춘천에서 첫날 일정을 하고 숙소로 가면서 식당을 찾고 있었다. 일정이 많아진 탓에 아침은 샐러드나 삶은 계란으로 때우고, 점심 한 끼 먹고 저녁은 바나나, 고구마로 때우니, 의도치 않게 다이어트가 되고 있었다. 춘천 가는 날에도 역시 아침을 샐러드로 때웠는데 점심을 먹지 못했더니, 허기가 지고, 진이 빠지고 있었다. 열심히 식당을 찾는데, 춘천의 아파트 울타리에도 장미가 활짝 핀 것이 보였다.
예뻤다.
장미를 보자, 다시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가 챙겨줬을 밥도 생각났다.
엄마는 평생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다. 결혼 전까지는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8명이나 되는 엄마의 조카들을 돌보며 지냈었고, 결혼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는내가 늘 곁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가끔 엄마 혼자 집에서 잠을 자게 되면 엄마는 잠을 못 자고 밤을 꼬박 새우고는 했었다.그런 엄마를 알기에 난 되도록 집에서 잠을 잤었다.
또 자식 걱정이 태산이었던 엄마는, 늘 자식들을 궁금해해서오빠나 언니는 거의 매일 안부 전화를 했었다. 그래서 가끔 전화가 안되면 엄마는 무척 불안해하셨고, 오만가지 안 좋은 상상을 하며 걱정에 걱정을 더 해 갔었다.
"네 오빠가 전화가 안된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일 하나보지."
이런 내 말은 엄마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고, 엄마는 통화가 될 때까지 걱정을 멈추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도 간혹 지방 일정으로 피치 못하게 집을 비우면 도착해서 전화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전화를 드려서 엄마를 안심시켜드리고는 했었다.
문득, 꼭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내 걱정을 할 엄마에게 안심하라고 전화할 일이 없다는 게, 속이 비어서 그런지 마음을 더 허하게 했었다.
"이제 나 누구한테 전화해. 나 밥 먹었냐고 누가 걱정을 해 줘."
엄마가 돌아가실 때, 언니는 엄마를 붙들고 울며 말했었다.
이후, 언니는 하루에 한 번씩 나한테 전화하며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왔다. 밥을 먹었는데도 헛헛함이 가시지 않아 맥주 2캔을 사 와서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는 곳에서.
8시 가까이 되자, 언니가 전화를 했다.
숙소에 잘 갔냐고.
저녁은 먹었냐고.
나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잠시 대화를 하고 끊었다.
엄마도 아마 같은 질문을 하고, 비슷한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었다.
"엄마, 아침을 시원찮게 먹었더니, 배가 너무 고픈 거야. 그래서 뭘 먹을까 무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더운데 짬뽕을 먹었어. 얼큰한 게 먹고 싶더라고. 건더기가 아주 많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지. 엄마 생각나더라. 엄마 짬뽕 좋아하잖아~ 엄마는 뭐 챙겨 먹었어? 나 없다고 그냥 고추장에 비벼 먹은 거 아냐?"
아마도 엄마는
"엄마는 집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아무렇게나 먹어도 돼. 너나 잘 먹고 잘 있다가 조심해서 와."
했을 것이다.
"엄마, 잠 안 오면 늦게까지 TV 보다가 자. 낼 일 끝내고 갈게. 일이 늦게 끝나서 집 가면 9시 다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