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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May 30. 2023

[엄마, 안녕] 12. 네 자매

 

이모와 이모 큰 딸 L, 그리고 외삼촌의 둘째 딸 J가 집으로 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에 유니가 예약을 해놨어. 아주 유명한 의사라 거기 가서 치료하면 된대"     


암 진단을 받던 날 엄마한테 유명한 대학병원의, 아주 유명한 의사한테 예약을 했다고 말했었다. 엄마는 그 말을 전하며 울고 있는 이모를 다독였었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엄마의 폐암을 알게 된 이모가 혹시 집에 올까, 엄마는 내내 걱정했었다.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고, 아무리 아파도 손님이 오는데, 뭐라도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부담스러운 마음에 이모가 오지 않길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이모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토요일 오전, 엄마는 직감했는지 갑자기 샤워를 한 후, 이모한테 전화를 했었다. 이모가 누군가와 함께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나에게 집 근처의 갈비탕을 사 오라고 했었다. 그 갈비탕은 이모와 이모부가 좋아해서 간혹 택배로 보내주던 것이었다.     

손님이 온다니, 나는 청소도 새로 다시 하고 갈비탕과 겉절이를 사 왔다.

그리고 오후 1시쯤 이모가 도착했고, 짐이 많다기에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난 이모 말고는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 없었다. 그간 엄마는 이모 댁과 외삼촌댁을 자주 다녔지만, 나는 집안의 경조사에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었다. 의례히 듣는 질문이 불편했었고, 그러다 보니 피하게 되었고, 엄마도 굳이 나에게 갈 것을 권하지 않았었다. 나보다 한참 위의 언니들인데 모른다는 표현을 할 수 없어서 그저 짐을 들고 이모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 J가 말했다.

"난 엄마 아픈 거 모르는 거다."

목소리를 듣자 기억이 났다. 20년 넘게 못 봤지만, 너무 반가운 목소리였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조카였었다.

"에이~ 엄마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

"그렇지? "

“그랴, 네 고모가 얼마나 눈치가 빠른 사람인데.”

이모가 J언니한테 말했다.     


      

"고모, 난 고모집이 이렇게 먼 줄 몰랐어. 이렇게 먼 데서 어떻게 다녔대? 고모가 너무 고생했겠어."

외삼촌의 둘째 딸 J가 엄마를 보자마자 말했다.

"아니, 이렇게 먼 데를 뭐 하러 와. 치료하고 내가 가면 되지."

“고모 보러 내가 와야지.”

“이모, 저도 왔어요.”

이모의 큰 딸 L이 말했다.

“주말에 쉬지, 일하는 사람이 여긴 뭐 하러 오냐고. 운전하면서 힘들게.”

L은 친근해 보이는 웃음을 보였고, 이모는 엄마를 보자,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다.

엄마는 이모한테,

“형부 식사는 어쩌라고 왔어?”

“형부도 오고 싶었는데, 못 왔어.”

“이렇게 먼 데를 어떻게 오셔, 형부가. 형부 식사가 걱정이네.”

이모님 댁은 금산이었고, L은 천안에 살았고, J는 대전에 살았으니, 운전하는 L이 금산에 들러 이모를 모시고 대전에 들러 J를 태우고 이곳 경기 북부까지 왔을 터였다. 그러니, 이들은 새벽부터 아주 먼 거리를 온 것이었다.

“근데, 이게 다 뭐야, 뭘 이렇게 많이 갖고 왔어. 힘들게?”

“묵 먹고 싶다기에 도토리묵 좀 쒀 왔어.”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엄마가 청포묵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드렸었는데.”

내 말에 엄마는,

“사는 거랑 달라. 이건 진짜야. 언니 팔도 아픈데 이런 건 뭐 하려 해, 글쎄.”

“청포묵은 좀 넘어가?”

“조금 먹을 수 있을까 해서 사다 달래서 먹었는데, 한 점 먹고 더 못 먹겠더라고.”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동치미랑 김장김치도 갖고 왔는데, 김치가 좀 짜.”

“짜면 어때, 두고 먹는 걸. 난 동치미를 먹고 싶어서 담갔는데, 맛이 안 들어서 못 먹고 있었어. 언니가 담근 건 맛있겠네.”

“고추장도 조금 쌌어.”

    

이모는 도토리묵을 직접 쑤어 왔고, 동치미와 김장김치, 고추장까지 평소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챙겨 오셨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집을 떠나온 이모와 L, J가 배고플 것을 생각해서 서둘러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동치미를 썰고, 도토리묵을 직접 무쳤다. 음식 솜씨 좋은 J가 하겠다고 해도 손님은 가만있으라고 자신이 해야 맛있게 무친다고 농담을 하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열심히 점심상을 차렸었다.

이모는 입맛이 없는지 잘 먹지 못했고, L과 J도 너무 맛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잘 먹지는 못했다. 갈비탕과 도토리묵, 동치미, 겉절이 등 맛있는 것들이 가득했지만, 누구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없었다. 아픈 사람 앞에서 맛있게 양껏 먹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았다.

엄마는 먹지 못하고 상 앞에 가만 앉아 있다가 이모 성의를 생각해서 도토리묵과 동치미를 조금 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참으려고 했지만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가서 바로 구토를 하고 말았다. 이미 먹는 것마다 구토를 하던 시기라 엄마는 먹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었다. 엄마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이모와 언니들은 생각보다 심한 상태에 놀랐다. 언니들은 밥만 싹싹 비워서 식사를 끝냈고, 이모는 이후 더 드시지 못했었다.

그 와중에 난 이미 무친 도토리묵이 삭을 것이 걱정되었다. 이모가 직접 쑨 묵은 부드럽고 탱글탱글하고 도토리 향이 진했고, 엄마가 양평 용문시장에 가서 직접 짜왔던 참기름으로 무친 것이라 너무 맛있었다. 그것을 삭게 둘 수 없어서 상을 치우면서 싹싹 긁어먹었었다.

“이모 묵이 진짜 맛있어요.”    


 

엄마는 치킨을 시키라고 했다. 이모가 치킨을 좋아하는데 이모 사시는 곳에는 치킨 집이 없어서 자주 못 먹는다고 이모에게 치킨을 사주고 싶어 하셨다. 이모도 싫은 눈치가 아니어서 치킨을 시키고 약국으로 갔다. 겔포스로는 엄마의 속 쓰림이 다스려지지 않아서 조금 더 좋은 게 있는지 물었고, 약사는 마취 성분이 들어간 제산제를 주었다. 약국에서 돌아와 보니 오빠와 새언니가 엄마를 보러 와 있었다.


“네 자매 아냐, 네 자매”


오빠가 이모와 엄마, 그리고 L과 J를 보며 말했다. 오빠는 집 안의 모든 경조사에 참여를 해서 친척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오빠는  L언니와도 아주 친해 보였다. 오빠의 말을 듣고 보니, 네 자매라는 말이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와 엄마는 자매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서로 더 닮아 갔었고 이모 딸인 L이야 말할 것도 없고, 외삼촌의 둘째 딸인 J가 엄마와 많이 닮아 있었다. 또 J와 이모와 엄마는 일주일에 2~3번 1시간 이상 통화하는 사이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어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넷이 묘하게 닮아 보였다. L언니는 이모한테 특히 잘했는데, 이모가 여행을 좋아해서 자주 모시고 다녔었고, 작년 봄에는 엄마와 J언니도 데리고 경주 여행을 갔었다. 엄마는 그 여행이 너무 좋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었다.

마침 치킨이 도착했다. 원래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 오빠와 치킨을 좋아하지만 먹지 못하는 엄마를 빼고, 이모와 언니들과 새언니와 함께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했었다.

L언니는 경주 여행에서 엄마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해 몰래몰래 사진을 찍었었다며 사진 몇 장을 보여 주셨다.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여행에서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단체 사진은 한 장 남겼는데, 그 사진에서 네 사람은 더 닮아 보였다.       



밤이 되어 엄마의 편백나무침대에서는 이모가 고, 언니들은 거실 바닥에 이불만 깔고 잤다.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내 침대에서 자라고 했지만, 언니들은 끝내 거실 바닥에서 잠을 잤다. 엄마는 소파에서 잤다. 평소에도 소파에서 잘 잔다고 이모를 안심시키면서.  엄마는 내내 손님들이 잘 자는지 신경을 썼고, 가습기가 너무 세지는 않은지, 거실 공기가 너무 차지는 않은지 걱정했었다. 운전을 해야 하는 L언니는 일찍 잠이 들었고, 이모와 엄마와 J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갈 시간이 다가오자, J언니가 나를 내 방으로 살짝 끌고 갔다. 그리고는 돈 봉투를 주며 많이 못 넣었다고 미안해했었다. 난 돈을 받지 않고 거실로 나와 엄마한테 J언니가 돈을 주려 한다고 일렀다. 언니의 사정도 녹록지 않음을 알기에 한 말이었고, 엄마도 너무 빤히 알아서 J언니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었다.

그리고 갈 때, 이번에는 L언니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엄마한테 돈 봉투를 주었다. 엄마는 왜 그러냐며, 여기까지 와준 것만도 고맙다고 하면서 돈 봉투를 다시 주었고, L언니는 받지 않으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거의 몸싸움 같이 실랑이를 벌였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엄마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돈을 던졌지만, 엘리베이터 안으로 돈 봉투는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이모와 언니들을 배웅하며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는데, 돈 봉투가 엘리베이터 사이로 떨어진 거 같다고 모두들 걱정을 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이모와 언니들을 배웅하는데, 이모가 침대 이불 밑에 돈을 놓아두고 왔다고 나한테 말했다. 헤어질 때면 늘 봐왔던 실랑이가 L언니로 끝난 줄 알았는데, 이모는 고단수였다. J언니는 나 모르게 내 책꽂이에 돈을 꽂아놓았다고 말했었다. 둘의 행동은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있던 실랑이의 결과를 물어봤는데, 엄마는 L언니가 준 돈을 갖고 있었다. 엄마한테 이모와 J언니의 말을 전했더니, 엄마는 뒤통수를 맞은 듯 놀라면서 이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뻔히 아는데, 돈을 왜 주고 가, 왜!!!”    


 

그것이 네 자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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