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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a Apr 27. 2023

[엄마, 안녕] 3. 거실 불을 켜다.

여수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니, 오후 5시였다.


섬진강변의 벚꽃은 만개했지만, 날이 흐려 벚꽃의 화사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날이 흐리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오히려 날이 쨍하니 맑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오빠도 나도 '엄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차에서는 '옛사랑'이 흐르고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빠는 차에서 늘 '옛사랑'을 들었었다. 오빠는 그 노래를 들으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었다. 이유는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집안 형편상 이른 나이부터 집을 자주 떠나야 했던 것과 그때마다 술에 취해 있는 아빠를 홀로 상대해야 했던 엄마가 걱정되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명절에 TV에서 이문세가 '옛사랑'을 부르는 것을 엄마와 함께 봤던 기억을 떠올렸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날이 흐린  상관없다는 듯, 하동, 화개장터 부근은 수많은 관광버스와 차들로 북적였고 도로는 주차장 같았다. 차들이 옴짝달싹 못하자, 관광버스에서는 사람들이 내려서 걸었다. 그러자 도로는 걷는 사람들과 차들이 한데 얽혀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날이 흐려도 벚꽃이 피어서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춘천에 사는 후배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얼마 전부터 카페를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빠서 휴무일인 월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며, 일요일 밤 카페를 마무리하고 춘천에서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었다.

혼자 남은 나이 많은 선배를 위로하겠다고.


언젠가 후배한테 엄마가 춘천닭갈비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는 언제든 엄마 모시고 춘천에 오라면서 춘천닭갈비도 먹고 좋은 데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었다.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엄마는 말만으로도 고맙다며 후배를 친근하게 여겼고, 후배와 엄마는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애틋한 사이가 되었었다.


후배를 맞기 위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지나고 있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장을 봐야 했고, 이미 해가 져서 거실에 불을 켜 둔 체,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

'아, 이 시간에 캐리어를 끌고 나간 적이 없구나.'

오전에 가야 물건이 좋은 게 있다고 엄마는 늘 오전에 장을 봤다.

중간 마트.

엄마는 집 근처의 유명 브랜드 마트를 그렇게 불렀는데, 엄마가 주로 장을 보는 마트 가는 길 중간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엄마가 집 가까운 중간 마트 말고 더 먼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이유는 명확했다.

'중간 마트는 비싸고 살 것도 없어. 시금치 요만한 게 삼천 원이라니까.'

 더 먼 마트는 배추나 무, 양파, 쪽파 등의 채소를 다발로 팔았고, 내가 보기에도  종류가 다양하긴 했다.  더 먼 마트는 집에서 20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였고,  허리가 고질적으로 아파서 가는 길에 2~3번은 쉬어야 했었다. 그래서 왕복하면 장 보는 데 한 시간은 걸렸었지만 엄마는 늘 먼 마트로 장을 보러 갔었다.  난 시간이 날 때 선심 쓰듯 엄마와 먼 마트를 동행하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와 나는 장바구니 캐리어를 서로 들겠다고 옥신각신했었다. 그냥 내가 들게 하면 될 것을, 엄마는 허리도 아프면서,

'엄마가 들 수 있어.'

'내가 들게.'

'괜찮아, 엄마 이 정도...'

'쫌.'

내는 내가 짜증을 내며 장바구니 캐리어를 빼앗듯 들었었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짜증을 낸 게 찜찜해졌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가다 뒤돌아 보면 엄마는 어느새 저 뒤에 있었고, 내가 잠시 기다리면 엄마는 그냥 가라고 손짓하고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열심히 뒤따라 왔었다.



난 그냥 '중간 마트'에 갔다. 정말 얼마 담지 않았는데도 금액이 상당했다. 놀란 가슴으로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오다, 문득 집을 올려다봤다.

불 켜진 거실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내가 집에 들어가야 거실에 불을 켜게 되니까, 올려다봐도 늘 불 꺼진 거실이 보였다.


전에는 저 불 켜진 거실에 엄마가 서 있고는 했었다.

내가 나가면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보고, 올 시간이 되면 언제 오나 늘 거실에서 날 기다렸었다.

어쩌다가 내가 너무 늦은 날이면, 엄마는 거실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버스정류장까지 와서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럼 난 화들짝 놀라서 왜 여기 있냐며, 밤늦은 시간에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엄마한테 도리어 화를 냈었다. 엄마는 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나에게

'조금 전에 나왔어.'

'여기가 너무 험하잖아. 불빛 있는 데로 다녀.'

라고 했었다.



거실에 불을 괜히 켜 놓고 나왔다.

난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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