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마지막 밤, 밀코와 함께

by 나봄

프라하의 마지막 밤은 칸티나의 티본스테이크와 나체푸의 밀코 맥주로 여행의 끝을 장식하기로 했다.
체스키크룸로프 여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칸티나로 향했다.

초겨울처럼 매서운 공기에 옷깃을 한 번 더 여미며 가는 길, 멀리서도 보이는 웨이팅 줄이 왠지 불안하다.


프라하 첫날엔 먹지 못했던 시그니처 메뉴를 맛보기 위해 다시 찾은 칸티나는, 예상보다 훨씬 붐볐다.

스탠딩 자리조차 없는 인파 속에서, 딸과 남편은 마지막 남은 티본을 기적처럼 확보했고, 나는 빈자리를 찾아 매의 눈으로 홀을 훑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다리가 짧아서인지 순간 동작이 느린 건지, 몇 번의 실패 끝에야 겨우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는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인지 음식이 늦게 나와 다행이지만, 이미 기진맥진해진 나는 또다시 입맛을 잃었다.

그 좋아하는 소고기 타르타르도 얼마 먹지 못했다. ‘그냥 나체푸로 갈 걸…’ 하는 후회만 남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한 채 복잡한 칸티나를 벗어나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요즘 프라하 MZ들의 핫플인 나체푸로 향한다. 필스너 우르켈 본사와의 합작으로 ‘탱크 맥주 Tank Beer’를 파는 곳이라 더 기대가 된다.

문을 열자마자 뽀얀 피부의 젊은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늦은 시간이라 맥주만 가능하다고 한다.

치즈튀김 맛집이라 해서 꼭 먹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주목적은 맥주니까.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탱크 옆에 자리 잡고 밀코를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데, 그것만으로도 작은 공연을 보는 듯했다.

인생 첫 밀코 어떤 맛일까? 보기만 해도 기대된다. 거품이 생명인 밀코를 재빨리 건네주는 직원,

눈으로 먼저 마신 뒤 입에 머금자— ‘아, 구름을 먹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부드럽고 크리미 한, 말로는 다 전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감탄을 연발하자 직원이 다가와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베리 나이스!”를 외치자 그는 웃으며 체코식 건배 인사인 “나스드라비”를 알려주고,

우리는 한국식 “짠! 건배!”를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언어로 건배를 외치며 한참을 웃었다.

밀코를 한 잔씩 마신 우리는 우르켈 맥주와 밀코를 더 주문해 마셨다.

안주 없이 맥주만 마시는데도 술술 넘어간다.

아직 독일은 가지 못했지만, 맥주는 독일이라는 공식을 깰 만큼 체코에서 경험한 맥주들은 단연 최고였다.

체코인들의 맥부심이 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그런지 아쉬운 마음 가득하다.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려면 일어나야 하는데 나체푸를 나서기 싫다..

아니, 프라하를 떠나기 싫다..ㅠ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나선다.


우리를 수시로 챙겨주던 직원과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며 인사를 나눈다.

뽀얀 얼굴의 친절했던 직원의 이름은 기욤이다.

웃으며 다가와준 기욤에게 프라하의 마지막 밤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나체푸를 나선다.


숙소로 가는 길에 알베르트에 들러본다. 내일 아침 독일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조식을 해결해야 하기에 간단한 먹거리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빵은 이미 품절이다.

그런데 여기도 내가 좋아하는 무화과가 있다.

몇 개만 집으려는데, “많이 사! 1킬로에 2천 원도 안 되니까 마음껏 사!”라는 남편 말에 과감히 열다섯 개를 집어 들고 신나게 어깨춤을 춰본다.
다만 문제는 계산대에서 발생했다.

남편이 노안으로 개당 단가를 킬로당 단가로 잘못 본 것이다. 결국 2만 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사는 비극이 일어났지만, 노안으로 인한 안타까운 에피소드에 한바탕 웃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무화과를 마음껏 먹게 됐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긍정의 마인드로 숙소로 가는 길. 이렇게 프라하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