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첫 아침.
프라하 첫날의 설렘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다. 칸티나에서 티본스테이크를 맛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대신 즐겼던 비프 타르타르와 맥주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열어본다.
컵라면 하나씩 손에 들고 있는 셋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창문 너머 보이는 빨간 지붕의 고풍스러운 건물을 바라보며 먹으니 이마저도 낭만적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남편을 보내고 일주일 남은 명절 준비에 분주했을 것이다.
명절 당일까지 이어질 집안 청소와 냉장고 정리, 손님들을 위한 이불빨래에 허덕이고 있었을 나를 떠올리니, 이 여유로운 아침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인생 첫 트램을 타고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가는 길, 어딜 보든 모든 게 예쁘다.
“어머, 하늘 봐! 어쩜 저렇게 파란 거야.” “저 구름 봐! 완전 양털처럼 둥글둥글, 너무 예뻐!” 모두가 인정한 똥손이지만, 열심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연신 나오는 탄성에, “엄마, 적당히~, 너무 흥분했어. 그만~”을 외쳐대는 딸.
그래도 어쩌겠나. 하늘만 봐도 감탄사 연발되는 내 정신과 입을 주체 못할 정도로 완벽한 날씨다.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니 녹음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마음이 차분해졌다. 수도원 성당 미사를 잠시 지켜본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경건해진다.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수도원 뒷길로 이어진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페트린 타워까지 왔다.
“걸어서 올라가자!”라는 내 말에 딸은 단호했다. “엄마, 내 도가니는 소중하거든. 난 엘리베이터!”
그래, 쌩쌩한 도가니 가진 오십짜리 둘이 걸어가마. 결국 남편과 나는 고관절과 도가니 운동까지 겸하며 계단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올라갔는데 안 좋기만 해봐라!” 투덜거리며 오른 전망대에서 본 프라하 전경은 그야말로 ‘천당 아래 프라하’였다. 붉은 지붕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물과 파란 하늘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내려오는 길, 중간 쉼터에서 본 뷰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창문 없이 트여 있어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편과만 보기 아까워 딸을 불러보지만, 도가니가 소중한 따님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버렸다.
수도원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남편과 함께한 맥주 수업에서 수도원 맥주 맛에 빠진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체코와 독일의 수도원 맥주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그중 첫 번째가 스트라호프 수도원이다.
엠버 맥주와 IPA 맥주, 꼴레뇨와 굴라쉬 폭립을 시켜본다. 기본 세팅인 빵이 한가득 담긴 바구니가 먼저 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식을 덜 시킬 걸.
기대하던 맥주가 나왔다. 맥주에 진심인 남편이 한 모금 마시자마자 감탄사를 쏟아낸다.
“와! 진짜 맥주다! 지금까지 내가 마신 건 뭐였지?” “자기야, 얼른 마셔봐, 너무 맛있다.”
“오! 아빠, 진짜 맛있다!” “엄마, 이건 꼭 마셔봐야 돼!”
나도 한 모금 마셔본다. 와… 마시는 순간, 토끼눈이 되어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IPA는 쌉싸름함과 풍부한 과일 향이 공존했고, 엠버는 부드러우면서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우리도 이렇게 맛있는데 남편은 얼마나 행복할까?
역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다. 딸아이의 만류에도 수도원 체험을 밀어붙인 내가 너무 뿌듯했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에서 맛본 맥주는 이후 어떤 맥주도 넘볼 수 없는 유럽 여행 최고의 맥주였다.
음식이 나왔다. 양이 많다는 걸 블로그를 통해 본 적이 있었으나, 한국의 1인 1메뉴가 몸에 배 깜빡했다.
그래도 그렇지… 양이 이렇게나 많을 것 같으면 주문받으면서 얘기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5인분은 족히 되는 양이다. 젠장, 셋이서 이걸 어쩐담? 그래, 오늘 저녁은 없다.
먹고 죽자는 각오로 시작해 본다. 근데… 맛이… 정말 미쳤다. 수도원 레스토랑은 맥주만 최고가 아니었다.
꼴레뇨의 바삭한 껍질은 턱관절이 아파도 멈출 수 없었고, 폭립은 딸이 ‘인생 립’이라며 감탄했다. 굴라쉬는 헝가리식과는 달랐지만 나름의 깊은 맛이 있었다. “천국이 따로 있냐! 이런 게 천국이지.”
죽자고 먹어도 남은 음식은 이제 우리 몫이 아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떠나기가 아쉬워 사진을 찍으며 몇 번을 맴돌다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본다.
수도원에서 내려가는 길에 오렌지 클래식 파노라마 전망대의 아름다운 뷰를 만났다. 무료로 그렇게 아름다운 뷰를 볼 수 있다니…
“아…, 패트린 타워 전망대에 쏟아부은 내 돈… 그 순간만큼은 진심 울컥했다. ㅠ”
그러나 어쩌리… 이미 지난 것은 생각 말자. 등 따습고 배부른 지금, 이 천상의 뷰를 마음껏 즐기자.
다시 발걸음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