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망.
그 반대는 절망일까?
누구에게나 그리고 나에게도 희망은 항상 있었다. 수시로 뱉어내는 투덜거림과 불만이 희망을 방해하곤 하였다. 그래도 희망으로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희망은 지루함을 참아내고 새로움에 닿을 수 있도록 수시로 인도하여 준다.
마지막 작별 인사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계절은 변해간다. 날씨가 차갑다. 떠나버린 빗소리에 떠오르는 이미 잊힌 더위속에서 맺히는 추운 겨울 속의 피어나는 꽃 같은 희망은 언제나 있었다. 어쩌면 오히려 희망이 없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절망스러운 마음을 만들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새해 첫날부터 아이가 신이 났다. 아이가 웃으니 부모도 즐겁다. 아이는 얼마 전부터 자전거를 가지고 싶어 했다. 태어나면서 잠복고환으로 두 차례의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부모는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해 계속 반대하였다. 태어난 지 십여 년이 훌쩍 넘겨 중학생이 되더니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소심한 주장을 하였다. "친구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는 데 나만 자전거를 탈 줄 몰라. 나도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싶어" 부모는 난감하였다. 실제로 주변의 아이 또래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등굣길에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등굣길에 만나더니 모두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면 혼자 걸어서 등교하고 있었다. 부모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불편하였다. 부모는 아이가 이룰 수 없는 작전을 계획했다. 아이는 시험공부하기를 싫어했다. 태권도와 컴퓨터 오락만을 좋아했고 하얀 종이 위에 적혀있는 검은 글씨들을 바라보는 것도 혐오하였다. 태어나서 첫 중간고사가 임박한 아이에게 부모는 성적과 자전거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였다. 부모는 아이가 낙담하고 자전거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항상 그렇게 지내오고 보였던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는 자전거를 당당히 갖게 되었다. 부모는 놀라움과 희망으로 기뻐했다.
80년대의 서울은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가난이라는 단어에 희망을 섞어 서울로 향한 사람들이었다. 강서구 일대에 주택가에 부엌이 붙어 있는 방 한 칸을 전세 내어 살게 되었다. 4백만 원 정도였던 것을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들었다. 주택에는 반지하에 셋집, 일층에는 주인집, 방한칸을 내어 준 우리 집, 그리고 이층 집으로 여섯 집이 모여 살았다. 주인집과 이층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화장실을 사용하였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나면 스무 걸음을 걸어 나와서 바가지에 물을 퍼서 다시 변기에 부어야 하는 구조였다. 시골의 옛날 푸세식 화장실에서 조금 진화한 환경이었다. 화장실 가기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때의 화장실의 추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꿈속에서 선명하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근처에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도록 나름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그 시절, 최고의 희망은 깨끗한 변기에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독립형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삶은 희망 속에 푹 익은 김치처럼 절여 있어야 한다. 혼자 깨어 웃고 있는 아기처럼 희망 속에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불공정함과 포기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생각 터널은 삶을 건조하게 한다. 혼자 있지 못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위로받으려 한다. 희망이 있다면 아니 희망을 가진다면 혼자서 더욱 단단해지고 매 순간이 몰입될 것이다. 그래, 절망이나 슬픈 일에는 슬쩍 눈을 감자. 극복하기 어려우니 비굴하게 피해 버리자. 그리고 감은 눈을 뜨면 다 지나가리라.
희. 망. 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