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려 애를 쓴다.
공감을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어려서 순종이란 단어로 마주했던 것들이 이제는 공감이라는 단어로 탈바꿈되었다. 상하간이 아니라 수평간이 된 것처럼 보이나 진정으로 공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일상이 평화로워졌다.
억눌리고 강요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 내가 선택에 의해, 혹은 자발적인 이해에 의해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공감하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공감하면서 평소에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면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고 공감하기 위해 인내를 배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공감에 익숙하지 않다. 어디서나 난 너에게 공감하려 애쓰고 있어, 난 그런 삶을 살 거야, 난 달라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솔직히 진정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간혹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그냥 고개 끄떡이면서 지나치고 있는 것도 참으로 많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나의 일상을 평안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공감한다. 아니 공감하려 한다. 공감할 순 없지만 공감이 좋아서 그렇게 공감한 척 지나친다.
그래도 공감이라는 말은 참 가슴 뜨거운 단어임은 부정할 수 없다. 공감하는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