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효당 Mar 23. 2024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다. 은퇴 후 귀촌한 장년 부부의 이야기였다. (대체로 그렇듯이) 귀촌은 남편의 뜻이었다. 귀촌 의사를 드러냈을 때 아내는 내키지 않았다. 망설였다. 그러나 결심이 강한 남편의 설득으로 고민 끝에 (마지못해) 따르게 되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뒤늦게 농촌 생활에 적응한다는 게 수월할 리 없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과연 귀촌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회의도 많았다. 지금 부부는 꽤 넓은 땅에 농작물을 가꾸고 있다. 집 주변에는 부부가 정성 들여 키운 각양각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이제 부부는 그럭저럭 농촌 생활에 자리를 잡아 나름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아내는 고단한 시골 생활에 남편만큼 만족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되돌아보며 남편에 대한 원망도 살큼 토로했다. 말수가 적은 남편은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사람이 고생이 많았지요’ 하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런 남편을 마주 본 아내의 표정이 인상에 남았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물었다. 남편이 원망스럽지 않으냐고. 그러자 아내는 (조금은 원망 섞인 표정으로) 남편을 지그시 바라보며 씩 웃는다. 그러고는 남편의 손을 잡으며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했다.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렇게 따스하고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그보다 더한 믿음이 어디 있을까. 그 이상의 사랑의 표현이 또 있을까. 그 부부의 사연을 속속들이 알 길은 없지만 참 아름다운 부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나이 든 남자들은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는 (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TV 방송을 보거나 주변의 친지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다. 아내에 대한 애정 표현이 서툴고(아니 아예 무지하고) 그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 인색하다. 또 멋쩍어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성격적인 면이 크겠지만 자란 환경이나 보고 배운 교육의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내 아버지 세대들이 그랬다. 지금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도 그런 성향은 많이 남아 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완고한 풍습이 지배적이었던 경상도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하다. TV 같은 데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화제에 오르면 더없이 쑥스러워한다. 예를 들면 ‘아버님, 어머님께 사랑한다고 한번 말해 주세요’ 하고 사회자가 짓궂게 요청하면 그저 입맛만 쩝쩝 다시다가 마지못해 ‘날 만나 고생했소’ 하고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게 고작이다. 둘만 있을 때도 표현하지 못하는 행위를 대중 앞에서 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주변의 지인들 중에는 예외적인 사람들도 많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결혼생활이 5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아내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노년에 들어 더욱 다정해지는 부부들도 많다. 수십 년 동안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했다며 은퇴 후에는 부엌일의 반을 맡아하는 친구도 꽤 있다.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거나(야채와 토스트 위주의 간단한 식사이지만) 설거지는 자기 몫으로 정해 놓은 것 같은 경우다. 언젠가 아내와의 아침 운동 길에 이런 이야기를 화제에 올렸는데 아내는 ‘당신도 좀 배우라’며 ‘나는 그런 집이 참 부럽더라’고 했다. 나는 ‘아차, 또 말을 잘못 꺼냈구나’ 하고 얼렁뚱땅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 했지만 아내는 누구누구의 예를 더 들며 고삐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내와는 중매결혼이다. 둘 다 당시로는 적령기를 한참 넘긴 나이였다. 선본 지 몇 달 만에 결혼했다. 서로의 성격이나 성향을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영 내키지 않는 결혼을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서로를 알기에는 아주 부족한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에 대해서. 둘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디까지가 연애결혼이고 어디까지가 중매결혼인지 무 자르듯 분명하진 않으나 누군가의 중개로, ‘결혼을 염두에 두고’ (그 기간이 얼마나 되든) 사귀다가 맺어진 경우를 중매결혼이라고 해두자. 대체로 중매결혼은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있는 기간도 부족하거니와 아무래도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거나 우선시하게 된다. 그런 형식으로 결합된 극단적인 예가 ‘정으로 사나 법으로 살지’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 부모 중의 많은 경우가 그랬다. 물론 그런 결혼이라고 평생 애정 없이 그냥 ‘말이 부부’로만 산다고는 할 수 없다. 연애결혼에 못지않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해로한 부부들도 많다. 결혼에 대해서 편하게(어쩌면 무책임하게) 이야기해 버리고 말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만남이었든 ‘팔자’라느니 정해진 ‘인연’이라느니 하는 체념적인 말로 퉁쳐 버리는 식이다. 일종의 운명적이고 우연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식이다. 오랜 기간 연애하며 사랑하고 정들어서 결혼한 부부도 살다 보면 연애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결점과 흠집을 발견하고 낙담하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살면서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지’ 하는 식이다.       



가끔 서로의 취향이나 사고방식의 차이로 아내와 다툴 때 연애결혼이었더라면 다른 방법으로 상황이 해결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연애가 도중에 좌절되지 않고 결혼까지 이른 데에는 이미 그런 차이까지도 수긍하고 서로 인정(또는 묵인)한 경우이거나 더 확장된 자장 안에서 서로가 용해된 결과이겠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갈등이 불거졌을 경우에도 소통하는 방식이 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쉽게 내칠 수 없는 끈끈한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을 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에그 정이 뭐라고’ 하는 말 같은 것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가끔 아내가 측은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남편 하나 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된 낯선 집에 시집와서 산다는 게 예삿일일까? 친정 사람들과의 추억이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는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전에는 그런 이야길 들을 때마다 ‘자기 집 이야기’할 때는 저렇게도 생기가 나는가 하고 떠름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즈음은 그게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타고난 성격이 쉽게 변하기 어렵고(쉽게 변하면 그걸 성격이라 하겠는가), 자라난 환경 속에서 굳게 형성된 관념이 금방 바뀌기도 어렵겠지만(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큰일이 난다는데) 그래도 나이가 사람을 변하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기기도 한다. 조금 더 이해하고 아내에게 맞춰 사는  남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해보는 요즘이다(너무 맹숭맹숭하고 무미건조한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아내로부터 ‘아무리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란 ‘찬사’를 들을 가능성은 없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이런 일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