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살다 간다는 것
휴가 중인 둘째 딸과 외출을 했다. 아내는 서울에 온 처형을 만나러 갔다. 나는 한 주가 끝나는 일요일에는 일주일 치의 신문에서 관심이 갔던 기사들을 오려서 스크랩한다. 전시회 소개 기사, 좋아하는 필자들의 칼럼, 여행지나 맛집 소개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모아 놓은 기사 가운데 가 보고 싶은 전시회 한두 곳을 정해서 구경 간다. 오늘도 전시회 두 곳과 그 주변의 맛집을 가기로 했다. 첫 번째 간 곳은 안충기 펜화전이다. 서초구 한국미술재단 갤러리 카프에서 열리고 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중앙일보 중앙 SUNDAY에 연재된, 신문 한 면 전체를 차지하는 그분의 펜화 ‘비행산수’ 시리즈를 스크랩해 놓고 생각날 때마다 감상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서울 산강山江’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는 22점의 작품은 북한산 · 백악산 · 인왕산 주변 등 서울의 동서남북을 그린 것이다. 안 작가는 중년의 나이에 ‘뒤늦게, 우연히’ 펜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2008년 펜화가 김영택 화백의 연재를 담당하면서 김 화백의 화실을 들락날락하며 ‘어깨너머로 구경하다 불쑥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뒤늦게, 불쑥 시작한 것이라지만 안 작가는 소년 시절에 이미 충청북도 미술제에 나가 금상을 받았을 만큼 그림을 잘 그렸다니 원래가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2021년 4월에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린 펜화가 김영택 화백의 전시회를 본 적이 있다. 김 화백이 작고한 지 세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생전에 김 화백의 펜화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기에 열심히 모아 온 나로서는 작품 실물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안충기 작가의 작품은 산과 강, 땅 등 국토와 자연을 그린 것이 많지만 김 화백은 한국과 해외의 문화재들을 많이 그렸다. 생전에 김 화백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매일 18시간씩 2주일을 작업하면 겨우 그림 한 장을 완성한다···그림 한 장을 그리기 위해 0.05mm짜리 펜으로 수십만 개의 먹선을 그린다···. 그때 그 기사를 읽으면서 펜화가란 수도승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안충기 작가의 그림에서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웅장한 그림 어느 한 곳에 ’ 개미만큼 작게‘ 그려진 사람, 동물, 또는 사물이다. (우리 옛 산수화에서처럼) 산속 널찍한 바위에 앉아 자연을 감상하는 선비와 강아지, 비탈길을 올라가는 자동차, 광화문 앞에서 사진 찍는 여자, 청와대 녹지원 앞 정원을 달리는 아이, 한강을 떠가는 작은 나룻배···.
다음 간 곳은 갤러리 카프에서 멀지 않은 예술의 전당이다. 진작부터 벼르고 있던 미셀 들라크루와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전시 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관람객들이 많다. 전시회 제목이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인데 화가의 유년 시절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을 자신의 추억과 자료를 통해서 재현한 것들이다. 사전을 보니 벨 에포크란 <프랑스에서,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이르는 말, 문화와 예술, 과학 기술 등 여러 방면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린 시기이며,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 그림에 나오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화가가 행복했던 파리에서의 유년 시절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곳곳의 장소들을 다양한 색깔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서 미술은 역시 색채 예술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림이 동화적이고 아름답다. 그의 그림에서 건물과 거리 못지않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이다. 가족들, 아이들, 연인들, 창문을 열고 빨래를 너는 여자,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자동차와 마차, 손수레, 강아지···. 그 모습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개성적이다. 동작은 다양하고 ‘표정’도 각각이다. 단순하게 표현된 인물들에 이렇게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은 화가의 대가적인 솜씨는 탄복할 만하다. 파리에서 태어나고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낸 화가는 1933년생으로 올해 91세인데 지금도 하루에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그림을 서울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전전戰前의 도쿄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고한 일본인들의 책을 본 것 같다. 벨 에프크란 용어처럼 ‘후루키 요키 지다이(古き良き時代)'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굳이 나 같은 세대에게서 찾아내 본다면 인정 많고 따스하고 순박하던 고향에서의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일까?
잠이 오지 않아 밤늦게 책꽂이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본 책은 1992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그해 대상은 양귀자 씨의 <숨은 꽃>이다. 작가가 오래전(199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최근에 새삼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해 작가는 큰 상도 받도 책도 낸 모양이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는 작가의 수상작과 함께 작가 자선작이 실려 있다. <한계령>이라는 단편소설이다, 작품 말미에 소설 제목으로 쓴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의 가사가 나온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나는 설악산에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소설을 읽고 나서 새삼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듣고 또 들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가슴을 울리는 것 같았다. 양귀자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니 새삼 생각이 난다. 작가 지망생 시절 나는 양귀자 씨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V S 네이폴의 『미겔 스트리트』, 이병주의 「예낭 풍물지」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한 마을을 무대로 여러 군상의 서민들의 삶과 에피소드, 애환 같은 것을 소재로 한 소설 말이다. 그런데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가사에 나오는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부질없는 집착과 얽매임을 떨어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 가고 싶다는 것일까?
<표지는 안충기 작가의 펜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