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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pr 08. 2024

꽃구경

노년단상 18

화동 정독도서관 정원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서울 시내 곳곳에 벚꽃 명소가 한두 곳이 아니겠지만 정독도서관 벚꽃도 그 화사함이 뒤지지 않을 것이다. 겨우내 한산하던 도서관 정원이 구경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북촌과 인사동이 가까운 지역이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저마다 잔뜩 포즈를 취하고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바야흐로 봄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도로변에 개나리가 제법 만개해서 그 샛노란 자태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며칠 전 다녀온 도봉산 자락에도 나무들은 드문드문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계절이 되면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또는 문장)들이 몇 있다.

‘···아지랑이가 들판 가득 차오른다. 언 땅이 풀리며 내뿜는 숨결이다. 들길에는 냉이와 꽃다지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드문드문 질경이도 보이고 민들레가 줄지어 피어 있는 모습도 보인다. 생명의 환희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는 휘청, 새 생명의 아우성에 빠진다. 살아 있음이 눈물겹다.

“선생님, 봄은 너무 좋죠?”

“좋구말구”

“나는 살아 있다는 게 눈물겨워요. 저 들판의 꿈틀거리는 생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핑 돌거든요.”

“좋으면 그냥 좋아야지 눈물이 나면 어쩌누.”

“작은 일에 자주 감동하면 늙어간다는 뜻인데······”’

(이 글이 그렇게나 인상에 남았던지 전에도 적은 적이 있는데) 김윤배 시인의 『시인들의 풍경』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난 신경림 시인」의 한 대목이다. 또 ‘봄날이 오면 뭐하노 그쟈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로 시작하는 최백호 씨의 노래 <그쟈>의 가사도 떠오르고,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유명한 구절인 ‘찬란한 슬픔의 봄’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이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 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뭘 하신대요 솔잎은 뿌려서 뭘 하신대요 아들아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내 아들아’ (노랫말은 김형영 시인의 시 「따뜻한 봄날」임). 어머니는 이미 자신이 산속에 버려질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장’ 같은 풍속이 남아 있던 시절의 이야기일 텐데, 후카자와 시치로深澤七郞의 동명소설을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이 영화화한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먹고살기 어렵던 옛날, 나이 든 부모를 산속에 갖다 버리는 끔찍한 풍속을 소재로 한 것들이다. 1960∼70년대에는 벚꽃이 한창이던 창경원(창경궁) 구경을 왔다가 노인을 버리고 가는 일이 종종 있어서 신문에 나곤 했다(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하얀 벚꽃을 꽃잎이 '난분분‘ 하다고 묘사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 최인호의 소설 「돌의 초상」도 그런 내용을 소재로 한 것이다). 전에 우리 가족이 나들이를 갈 때 자동차에서 장사익의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꽃구경>이 나오면 막내아들이 눈물을 글썽여서 제 누나들이 놀리던 생각이 난다.      



며칠 전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지방에 갔을 때 가까운 집안 어른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103세인 그 어른은 몇 주 전에 요양원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80이 넘은 큰아들이 봉양하고 있었는데 치매 정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해지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노모는 밤만 되면 누군가가 칼을 들고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놀라 고함을 지르는 행동을 반복했다. 아들이 달래려고 하면 지팡이를 찾아들고 아들을 후려치면서 횡설수설하는데 힘이 얼마나 센지 감당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럴 때는 아들뿐 아니라 식구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전에도 가벼운 치매기는 있었지만 식사도 잘하고 신체적인 건강에 특별한 이상도 없었으며 식구들을 알아보고 대화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간간이 딸에게도 갔다가 며칠씩 지내다 오곤 했는데 몇 달 전부터 전에 없던 증세가 나타나고 딸에게 가기를 거부하는 등 차츰 그 정도가 심해지다가 최근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었다. 치매는 초기에는 미약하던 증세가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그 단계가 높아진다고 한다.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고 알려진 큰아들이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결국 요양원을 선택했다. 자식들이 면회를 가면 노모는 분노한 표정이 역역하다고 한다. 자신이 자식들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요양원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하루 종일 말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모습도 집에 있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졌다고 했다. 큰아들도 면회를 다녀온 뒤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요즘도 이런 인사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전에는 노인에 대한 흔한 덕담 중 하나가 ‘아버님(어머님), 오래오래 사세요’였다(아마 지금은 ‘건강하세요’ 정도의 말로 바뀌지 않았을까?). 그런 인사처럼 이제 ‘오래오래 살아 100세 수명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집 떠나 요양원에서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이 아이러니란···. 그런 고통스러운 장수를 피하고자 노인들은 동네 공원 운동기구에 매달려 있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어눌한 걸음으로 산책길을 걷고 또 걷는다. 어느 신문을 보니 산부인과 병원은 나날이 줄어들고 장례식장은 폐업해서 요양원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100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70 넘은 장남 노인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서관 벤치에 앉아, 이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에, 늙음에 대한 어지러운 상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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