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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l 26. 2024

다시 쓰는 일기 33 - 2024.7.XX

‘밥은 배불리 먹여라’

김민기 씨가 세상을 떠났다. 나와는 동년배인 그분을 생전에 한 번도 먼발치에서라도 뵌 적이 없지만 왠지 마치 육친이 떠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우리 시대에 그분의 노래만큼 가슴에 깊이 각인된 노래는 없을 것이다. 신문에 보도된 그의 별세 소식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고인이 유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는 단 세 줄이었다고 하는데, ‘절대 (장례식을) 화려하게 하지 마라’ ‘추모 공연도 하지 마라’, 이 두 가지는 이해가 가는데 마지막 하나 ‘(조문객) 밥은 배불리 먹여라’는 의아했다. 장례식장 밥이라야 육개장 한 그릇과 떡이나 과일 한두 조각이 일반적인데 왜 밥은 배불리 먹이라는 말을 남겼을까. 생전에 고인이 조문한 어느 장례식장에서 인색한 식사 대접에 마음 상한 적이 있었을까. (이 소식을 들어서였을까. 다음 날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이 장례 식사비로 5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기사가 났다). 김민기를 추도한 조영남 씨의 말과 글도 인상적이었다. 조영남 씨는 “김민기는 73세에 죽었어도 요절”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늙게 요절한 천재”라고 하면서 울먹였다고 한다. 참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조영남 씨가 중앙일보에 쓴 추도문에는 ‘언젠가 김민기 씨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아침 이슬>이 국민가요가 됐는데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겨울 내복 같은 거‘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자신의 노래를 더없이 겸손하면서도 정확하게 비유한 것 같다. 나는 김민기의 노래 가운데 <가을 편지>를 참 좋아해서 많이 들었는데 앞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인이 생각날 것 같다. 우리 시대의 한 거인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3주가 넘도록 집 안에 갇혀 있었다. 이석증이라는 병으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일어서서 걷는 것은 고사하고 머리를 들 수 없도록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며칠을 참고 견디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병원 응급실에 갔다. 평생 처음으로 휠체어를 탔다. 응급실에 간 것도 처음이다. 의사 말로는 뇌경색이 아니면 귀에 이상이 있든지 둘 중 하나라 했다. 정밀 검사 결과 다행히 뇌경색은 아니었다. 귓속에 가만히 있어야 할 돌이 움직여서 융털을 건드려 균형감각이 깨어지는 현상이라는 듯한 설명이었는데 (그래서 이석증耳石症이라고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비몽사몽 간이라 들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신체의 신비로운 작용에 대해 새삼 실감했다. 사흘 치 약 처방을 받아서 복용했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가서 귀 검사를 하고 일주일 분의 약을 타왔다. 머리가 무겁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은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몸무게는 3kg이나 빠지고 다리 힘이 풀려 나도 모르게 술 취한 것처럼 ‘갈지자’ 걸음이 된다. 7월은 음력으로 내 생일 달인데 ‘참 의미 있는’ 생일 선물을 받은 셈이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 몇 권을 빌려왔다. 책이라고 3주 만에 잡아본다. 읽기 쉬운 책을 고른다고 추리소설을 골랐다. 일본 작가 마쓰모토 세이쵸(松本淸張)의 작품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있는 일본의 추리작가들 작품이 많이 번역되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일본의 몇몇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독자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영미와 유럽의 유명 작가들 추리소설 몇 편을 앍은 적이 있지만 그리 흥미는 느끼지 못했다. 마츠모토 세이쵸의 추리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일본에 첫 주재근무를 나갔을 때였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어 문법책 두 권을 읽은 것 외에는 일본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에 일본어를 익힐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택한 방법이 일본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 공부였고, 그걸 떼고 나서 도전한 것이 일본 추리소설이었다. 추리소설은 스토리 자체가 흥미가 있어 설사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나와서 그냥 넘어가더라도 줄거리 이해에 큰 지장이 없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추리소설이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는데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가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추리소설 작가가 세상을 떠나 신문에 떠들썩하게 추모하는 기사들이 났었다. 1992년이었던 같다. 잡지사 문예춘추에서 작가의 추모특집으로 두꺼운 별책別冊을 발간했는데 그걸 읽어 보니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짐작이 갔다. 작가는 1909년생인데 집안이 가난하여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이 다였다. 어린 나이에 취직한 작가는 도서관에서 세계문학전집 등을 읽고 작가로서의 소양을 키웠다고 한다. 마흔이 넘은 1950년에 데뷔를 해서 1953년에 아쿠다가와 상을 받았다. 작가가 추리소설을 쓴 것은 1955년부터인데 이전의 추리소설들이 주로 ‘트릭’ 위주의 소설이었던 것과 달리 ‘사회적 구조의 모순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범죄를 다룸으로써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된다. 작가로서 활동한 40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700편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추리소설뿐 아니라 일본 고대사에 대한 연구도 깊어 관련 책들을 냈고, 전후 일본의 굵직한 사건들을 파헤친 <일본의 검은 안개> 시리즈의 논픽션 형태의 저서도 많다. 나는 일본에 있을 때 이분의 추리소설 10여 편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이미 30년 전의 일이라 기억도 희미해서 이번에 다시 몇 권을 빌려 보았다. 그의 초기작인 『점과 선』, 『모래그릇』, 『0의 초점』이다. 예전에 보았던 때의 감동이 다시 일었다. 추리소설은 선진국에서 발달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미 유럽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 유행하는 장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추리소설의 불모지일까. 김성종 정도의 작가만 기억될 뿐이다. 소위 선진국 대열에 든다는 오늘날에도 그렇다. 이즈음 몇몇 젊은 작가들의 시도가 있는 듯한데 그리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 서울 시내 동네 서점 몇 군데를 찾아다닌 적이 있다. 신촌역 근방의 추리소설 전문서점도 그때 가봤었는데 역시 외국 소설들만 서가에 가득했다. 남의 나라 추리소설 작가 이야기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 같다. 이석증 탓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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