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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01. 2021

다시 쓰는 일기 2 – 2021. 11. XX

부산한 일요일 저녁

막내아들이 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요일 저녁은 온 집안이 부산하다. 직장 생활 2년 차인 막내는 직장 가까운 서초동에 원룸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별 일이 없는 한 금요일 저녁에 집에 왔다가 일요일 밤에 돌아간다. 직장 생활 초기 한 동안은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에 집을 나섰다가 밤 9시 넘어 귀가하는 패턴을 두 달 남짓 반복한 후에 결국 독립해 나갔다.

아들은 금요일 본가에 올 때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래 감을 가지고 온다. 주로 와이셔츠다. 매일 갈아입다 보니 너, 댓 개나 된다. 아내는 주말 동안 빨아서 세탁하고 다림질까지 해서 옷걸이에 건 채로 들려 보낸다. 그뿐인가. 일주일 동안 먹을 국이나 반찬이 한 보따리다. 미역국일 때도 있고 육개장이나 올갱이국일 때도 있다. 물론 제 식성을 고려한 세심한 선택이다. 깻잎절임이나 젓갈, 명태 껍질 양념한 것 등 밑반찬도 보태어진다. 정작 본인은 지난번 가져간 것들이 아직 그냥 남아 있다며 반찬 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양한다. 그래도 아내는 굳이 들려 보낸다. 집에 가보면 한, 두 음식을 빼고는 이전에 가져간 것들이 냉장고에 그냥 들어 있다. 이미 맛이 간 것도 있어 결국 버리게 된다. 그런 일을 매주 겪으면서도 아내는 '왜 제대로 챙겨 먹지를 않느냐'며 잔소리를 하고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사실 아내의 이런 배려(?)는 타고난 것인 것 같다. 늘그막에 내가 단신부임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는 3년 반 동안에도 아내는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반찬을 해 날랐다. 가족 누군가를 위하여 이것저것 만들어 나르는 일이 아내에게는 일종의 즐거움이기도 한 게 아닐까 하는 ‘꼰대’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아들이 본가에 와 있는 주말에는 잔치(?)가 벌어진다. 이틀 중 한, 두 끼는 별식이 제공된다. 수육 보쌈인 경우고 있고 월남쌈이 나오는 때도 있다. 덕분에 가족 모두가 입 호강을 한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요일 저녁은 온 가족이 출동한다. 아들을 데려다 주기 위해서다. 자동차 운전은 물론 내가 한다. 아내는 물론이고 때로는 둘째 딸까지 동행한다. 아들은 자동차를 사고 싶어 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주차장이 없다. 자취방에 도착하면 아내는 이것저것 잔소리를 한다. 냉장고를 열어서 남아 있는 반찬을 살펴보고 ‘이건 왜 먹지 않았느냐’, ‘자주 방을 환기시키지 않아 냄새가 난다’, ‘청소 좀 하고 지내라’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나와 딸아이는 건조대에 널어놓은 수건과 속옷들을 걷어서 개고, 아내는 양복바지를 다림질한다. 때로는 밥솥에 밥까지 안쳐준다.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은 5층 건물의 1층인데, 비탈길 도로변에 지어진 건물이라 반 지하나 다름없다. 당연히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때때로 아내는 아들에게 ‘버젓한 집’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부모 한탄을 한다. 친구 누구누구의 예를 들어 비교한다. 그럴 때마다 ‘무능한 아비’가 된 나는 눈만 껌벅이며 입맛만 다실뿐 할 말이 없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내는 두, 세 번 전화를 한다.

'문단속을 잘하라' '밥을 꼭 챙겨 먹어라' '자주 환기를 시켜라' 등등.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면 지하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에도 주차할 공간이 없다. 몇 바퀴를 돌다가 건너편 동 앞 어린이집 빈터에 겨우 주차하면 다행이다. 한 집에 두 대 이상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탓인 것 같다. 아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TV를 켜서 <미운 우리 새끼>라는 예능 프로를 시청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연예인 어머니들이 나와서 아들의 사생활(?) 찍은 장면들을 보면서 웃고 환담하는 프로그램인  같은데, 아내는  프로를 즐겨 본다. 뜬금없이 나는, ' TV 제작자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통감한다.  아내가 거실에서 TV  동안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오늘은 가수 이동원의 <향수> 여러  반복해서 들었다. 작곡가 김희갑이 정지용의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이동원이 테너 박인수와 함께 불러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동원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덧없다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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