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에는 녹엽이 우거지고’
오늘도 아내와 정발산에 오른다. 5월의 정발산은 푸르다. 봄꽃들은 어느새 한창을 지났지만 풀과 나무들은 초록빛이 나날이 짙어간다. 언제나 그 지점에만 가면 들려오는(그 근처에 그들의 집이 있나?) 아름다운 새소리가 오늘도 들린다.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듯하다. 데구루루 구르는 듯한, 맑고 영롱한 소리다(그 아름다운 소리를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공원 안내판을 보니 정발산에 살고 있는 새는 텃새와 나그네새가 각각 4종류이다. 텃새는 오색딱따구리, 어치, 붉은머리오목눈이, 그리고 때까치이고, 나그네새는 되지빠귀와 노랑눈썹솔새, 노랑딱새와 후투티이다. 각각의 새에 대한 특징을 적은 설명에 되지빠귀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으로 적혀있어 소리의 주인이 이 새가 아닐까 짐작해본다(여름 철새라는 설명도 있어 아닐지도 모르겠다). ‘가수’가 누구인지 굳이 알 필요가 있겠는가. 음악만 들으면 그만이지. 숲길로 들어서면 작은 생태연못이 나오는데 개구리 합창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수많은 조약돌들을 서로 부비는 소리 같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놀이기구가 설치된 야외 학습장을 지난다. 평일이면 어린이집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이 많은데 오늘은 휴일이라 보이지 않는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인데 조금 아쉽다. 등산(산책)객들 중에는 맨발인 사람들도 꽤 많다. 우리 내외는 아직 맨발로 걸어본 적은 없다. 나무 데크계단(제법 길고 경사가 있어 숨이 찰 만큼의 운동 효과가 있다)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가는데 숲 속에서 새 두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싸우고 있다. 먹이를 두고 싸우는 것일까, 사랑싸움을 하는 것일까? 작은 나무토막을 던지자 싸움을 그치고 제 갈 길로 날아간다. 집에서 나와서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라야 고작 1시간이다. 높이가 100m도 되지 않는 정발산이지만 동네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이 생각난다. 이양하 선생은 그 글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가장 풍성하고 아낌없이 혜택을 내리는 시절은 봄이요, 봄 가운데에도 만산에 녹엽이 우거진 5월’로,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라고 예찬했다. 이제 그 5월도 다 가고 있다.
며칠 전 KBS의 다큐 인사이트(<우리의 시간은 빛나고 있어>)를 보면서 받은 감동이 아직도 잔잔하게 남아 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퇴직하고 8년 전 홍성으로 이사와 농사짓는 김종도(70세) 씨와 윗집의 여덟 살 난 어린이 황우리와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다. 우리가 1살 때 이사를 왔으니 김종도 씨는 우리가 기저귀를 차던 시절부터 알아왔다. 김종도 씨 부부는 우리네 삼 형제를 친손주처럼 생각하고 한 몸처럼 지낸다. 우리에게 종도 씨는 ‘친구보다 더 편한 사람’이다. 우리는 때로 종도 씨에게 전화해서 “종도, 거기 있어? 어디야?”하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종도 씨를 자기 친구라고 확인하는 의미이다. 종도 씨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도 모를 때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니 참 좋았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고 종도 씨를 따라다녔다. 종도 씨네 마당이 어린이집이었다. 학교를 퇴직한 후 2년을 (아이들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 학교생활을 잊으려고) 지리산에 들어가 살다가 홍성으로 온 종도 씨에게는 우리 형제가 ’선물처럼 온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종도 씨의 손수레를 타고 논밭을 누볐고, 종도 씨에게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걸음마도 달리기도 자전거도 모두 종도 씨가 손을 잡아주었다. 두 사람 사이는 마치 천진난만한 친구 같다. 종도 씨는 우리의 선생님보다는 덩치 큰 친구가 되기를 자처했다. 종도 씨는 우리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일기처럼 기록해서 우리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듯이 보내주기도 했다. 종도 씨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담아 보려고 아이들 말을 마당에 적어 두었다가 얼른 집에 들어와 그대로 노트에 옮겨 적는다. 종도 씨는 아이들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채집한다‘고 표현한다. 이제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네는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종도 씨와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또 종도 씨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차츰 자기들 세계가 확대되어 종도 씨의 마당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가는 것을 느낀다. 종도 씨 부부는 그동안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자주 떠올린다. 만남도 헤어짐도 순리대로 되는 것이지만 부부의 마음은 허전하다. “아이들이 없고 집도 불빛이 없어지면 집도 생명이 없어 보여요” “애들이 저희한테 그렇게 보이는 거죠”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둘이 보내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마음으로. 저렇게 우리한테 큰 차지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아이들이) 엄청 큰 존재예요. 저보다는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서 김종도 씨 부부가 한 말이다. 부부는 또 말한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언덕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잡고 올라오던 쑥이나 칡덩굴처럼 자신들이 힘이 되어 주었을까? 하고. 아이들은 잊었겠지만 부부는 자신들이 그런 힘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모여 있는 5월에 어울리는, 가슴이 훈훈해지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이야기 사이사이 종도 씨가 일기처럼 기록하는 글들이 나오는데 인상적인 구절 몇 곳을 적어 본다.
'··’우리‘가 타고 놀던 그네가 아직 흔들리고 있다. 마음속 ’우리‘가 흔들어 놓은 그네도 언젠가는 멈추겠지. 그네 위에 노을 가루가 소복이 쌓인다'.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겨두고 갈까. 희끗한 머리카락 한 줌, 마른기침 한 두름일까‘.
’창문 틈을 뚫고 삐져나오는 아이들 소리, 아침 햇살이 터져 나와요‘···.
불현듯 이제 곧 백일이 되는 쌍둥이 외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고 싶다.
(텃새니 나그네새니 하는 새 이름을 쓰고 나니 갑자기 ‘으악새’가 생각난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하고 시작하는 우리 옛 가요에 나오는 으악새 말이다. 막연히 으악새라는 새가 있나 보다 하고 짐작해 왔던 그 으악새가 ‘마른 나뭇잎들이 가을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참 ‘허탈’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