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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소사小史

by 청효당

지방에 거주하는 딸네 집에서 보름 남짓을 지냈다. 사위가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가는 바람에 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아내가 쌍둥이 육아와 살림을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외손녀들은 태어난 지 이제 4개월 반이 지났다. 출산 이틀 후 퇴원할 때 보았던 모습에 비하면 제법 ‘아기 모습’을 갖추었다. 병원에서 처음 손주들을 대했을 때는 너무 작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과장해서 말하면 ‘TV 리모컨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이제는 제법 몸무게가 늘어서 안으면 묵직한 느낌이 든다. 며칠 전부터는 스스로 뒤집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비록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가까스로 성공하는 정도이지만. 이번에 딸네 집에서 지내면서 아이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쌍둥이다 보니 그 어려움은 훨씬 더했다. 거실 벽에는 아기들의 하루 ‘스케줄’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우유 먹이기, 잠재우기, 놀아주기, 목욕시키기 등등이 촘촘한 시간 단위로 적혀 있다. 수유량과 수유 시간, 대소변을 본 시간도 꼼꼼히 기록한다. 육아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요즘 각 지자체마다 출산 장려 차원에서 신생아에 대한 여러 지원 정책이 많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루 소모하는 기저귀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분유에, 각종 아기용 도구(기저귀갈이대, 목욕통 등)와 화장품에, 옷에, 유아용 침대와 장난감, 놀이도구 등 종류도 많다. 비용은 그렇다 치고 딸아이의 육체적 노고는 옆에서 보기에 딱할 지경이다. 하루 수면 시간이 서너 시간도 되지 않고, 식사 시간은 제멋대로인 데다 하루 두 끼를 챙겨 먹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보름 동안 주방 일은 거의 아내가 맡아하고 육아도 도와주어서 딸로서는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우리 내외는 (특히 아내는) 파김치가 될 만큼 피곤한 날들이었다. 제법 묵직해져 가는 아기들을 안는 시간이 많아서 힘이 들고, 한밤중이나 새벽에 깨서 칭얼대는 아기들을 돌보느라 잠도 부족했다, 그렇지만 귀여운 손주들을 보는 즐거움은 그런 육체적인 수고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했다. 까르르 웃고, 제법 옹알이를 하며 눈을 맞추고, 안간힘을 쓰며 뒤집기를 시도하는 모습 등을 보는 것은 세상에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을까 하고 여겨질 만한 일이었다. 집에 돌아온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아내는 손주들이 보고 싶어 매일 영상 통화를 한다. 요즘 우리 가족의 으뜸가는 즐거움은 손주들 보는 일이다.



휴대용 돋보기의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명칭을 ‘힌지’라고 하는, 프레임과 인경다리(템플)를 연결하는 부분으로 안경다리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부속품이 망가지며 안경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확인한 것인데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무심하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의 구조에 대한 명칭을 정작 적으려고 하니 너무 막막해서 놀랐다).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보려고 주머니에 넣어둔 돋보기를 꺼내다가 잘못해서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다리가 부러진 안경이라 걸칠 수가 없어 손으로 잡고 겨우 궁금한 사항은 확인했지만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었다. 집에서 사용하는 돋보기는 따로 있고 외출할 때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이라 값싼 것이지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나이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돋보기가 없으면 이만저만 생활이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는 가장 우선적으로 돋보기를 챙겨야 한다. 언젠가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을 타고나서 안경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안경이 없으면 길 찾는 데 애로가 발생한다.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어 그냥 목적지 정류장에 내려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데 카톡에 적힌 식당 이름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 가는 경로는 막막했다. 네이버 지도를 보고 찾아가야 하는데 확대를 해도 글자를 식별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역을 나와 대충 길을 잡고 걷다가 지나가는 젊은 분에게 도움을 청했다.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이 식당을 찾아가는데 어디로 가면 되겠느냐고 물었다(물어볼 수밖에 없는 사연을 설명하면서).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젊은이는 ‘별 희한한 노인을 다 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내 느낌에) 내 휴대전화를 보더니 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 뒤로 나는 외출할 때는 무엇보다 우선해서 안경을 챙기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 안경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큰딸이 내게 돋보기를 사주려고 동네 단골 안경점에 데리고 갔다. 나는 값싼 휴대용 돋보기 하나를 사고자 했는데, 시력 측정 결과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커서 이대로 방치하면 시력이 점점 나빠질 거라며 평소에도 안경 착용하기를 권했다. 주변에는 백내장 수술을 한 친구들도 많은데 나는 평소 눈이 침침하고 건조해서 안과에 자주 가긴 하지만, 수술을 해야 할 정도의 질환은 아니어서 방심하고 눈 보호에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값이 걱정되어 망설이다가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약간의 도수가 있고 자외선 차단 등의 효과가 있는 안경을 맞추게 되었다. 딸의 강력한 권유도 한몫을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평소에 일상적으로 착용할 안경과 돋보기 등 안경 두 개를 새로 소유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읽을 때는 평소에 끼고 있던 안경을 벗고 돋보기를 끼는 친구들을 보며 ‘무슨 안경을 둘씩이나 가지고 다니냐’고 핀잔을 주곤 했는데 내가 그런 꼴이 되고 말았다. 안경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덧붙여야겠다. 올해 운전면허 적성 검사 대상이라는 통지를 한국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받았는데 내가 가진 1종 운전면허는 시력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 기준은 ‘두 눈 뜨고 0.8 이상이고 각각 시력은 0.5 이상’이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작년 건강검진 결과로는 나는 이 기준에 미달되어 아마 2종 면허로 강등되어야 할 듯한데, 이번에 맞춘 안경을 착용해서 교정시력을 적용하면 혹시 1종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사실 내게 1종 면허를 유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긴 하다. 면허 취득 이후 1종 차량을 운전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고 물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왠지 ‘면허 강등’ 같은 ‘불명예’는 받고 싶지 않은 게 내 심정이다. 이번에 새로 맞춘 안경의 효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다. 다리가 부러진 내 안경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6월이 가기 전에 뭔가 한 꼭지 글은 올려야 해서 이런 넋두리를 그럴듯한 제목을 붙여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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