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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일기 39 – 2025. 7. XX

가방 · 주식 · 기타

by 청효당

붓글씨 쓰러 가는 날이다. (언제나처럼) 붓과 먹, 화선지, 문진 등이 든 검은색 손가방을 들고 나서자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잔소리를 한다. ‘좋은 가방 놔두고 굳이 왜 그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나무람이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라서 나는 못 들은 척 가방을 둘러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LG’ 라벨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는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은 것 같은데, 그 가방이 오래되고 서예 도구를 넣어 다니기에는 좀 작긴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가방 벨트 천(어깨에 닿는 부분)이 해져서 너덜너덜하는 것을 ‘스테이플러를 찍어서’ 땜질을 했는데, 아내에게는 그게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아내가 말한 ‘좋은 가방’이란 수년 전 처가 식구들끼리의 미국 여행에서 아내가 내게 사다 준 것을 말한다. 크기는 지금 들고 다니는 가방과 별 차이가 없는데 재질이 고급스러워 보이고 더 견고하다. 나는 이 가방을 한 번도 들고 다닌 적이 없다. 수년 동안 벽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생각해 보면 내게는 뭔가 이상한 집착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옷도 그렇고 가방이나 신발 같은 용품은 계속해서 사용하던 것만을 고집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새것이 있는 데도 그렇다. 아내는 나의 그런 버릇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가끔 서로 다투는 빌미가 되고는 한다. 이걸 서로 간의 취향 차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별난 내 성격 탓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가방 같은 걸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회사에 재직 시에도 서류 가방 같은 걸 들고 다닌 적이 거의 없고,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백팩 같은 것도 메고 다니질 않는다. 서예 교실의 나이 많으신 동료분들은 모두 다 이 백팩을 ‘지고’ 다닌다. 백팩이 아니더라도 ‘유치원생 가방’ 같은 작은 가방을 대각선으로 메고 다니는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런 가방 메는 것을 질색으로 여긴다. 노인들이 그런 가방을 걸고 다니는 것을 이해는 한다. 뭘 잘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핸드폰이나 교통카드, 손수건이나 수첩 같은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닌다. 나는 핸드폰은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지갑은 왼쪽 뒷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소지품은 없다. 대개는 빈손이다. 우리 나이쯤 되는 분들은 핸드폰 케이스를 선호한다. 전화를 걸고 받을 때는 책표지처럼 펼치고 평시에는 닫아 놓는 가죽 케이스 말이다. 그 안에 카드나 신분증을 넣기도 한다. 나는 이것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알맹이 그대로의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 앞으로도 그런 케이스를 사용해 볼 생각은 없다. 아내 말처럼 내가 좀 별난 성격의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염천炎天의 날씨라 그동안 해오던 아내와의 아침 산책(운동)도 중지한 지 여러 날이다. 간간이 잡혀 있는 지인들과의 모임도 웬만하면 불참한다(이 더위에도 모임마다 꼬박꼬박 참석하는 친구들이 대견해 보인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날의 연속이다. 이런 무료함을 깨고자 시도한 두 가지 일과는 ‘주식과 기타 연습’이다. 주식은 오전 일과로 아침 9시에서 10시까지만 하고, 기타는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하는 오후 일과다. 재미 삼아 주식을 시작한 지는 이제 곧 3년이 된다. 투자 금액이 소액이라 말 그대로 ‘소일거리’이긴 하나, 차츰차츰 ‘주식으로 돈 벌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나름대로는 제법 공부(기초부터 심화 과정까지)를 했다. 유튜브 방송의 웬만한 주식 강의(종목 추천이 아니다)를 들을 만큼 들었고 차트 분석이나 각종 지표 공부도 했다. 뭐 하나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내 성격을 아는 아내는 처음 한동안은 극구 말리다가 이제는 포기한 듯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그럼 돈은 좀 벌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내 몇 달 용돈에 해당하는 ‘거금’을 날렸다. 그 정도로 돈 벌 수 있다면 누가 주식에 손대지 않겠는가! 그저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조금 눈을 뜬 것 같다. 그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이 줄어든 게 다행이고 요즈음은 (비록 푼돈이지만) 잃는 날보다는 따는 날이 많은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늘그막 용돈 정도는 벌자는 게 목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이 맞는 말이기를 기대해 본다.



기타를 손에 잡은 지는 10년쯤 된다. 처음에는 동네 기타 학원에서 클래식 기타를 3년 배웠고, 이어서 동네 문화센터에서 통기타를 1년 배웠다. 기타를 배운 후 한동안은 집에서도 열심히 연습을 했다. 코드를 익히고 주법도 익혔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늘지를 않았다. 통기타가 특히 그랬다. 코로나19가 발발한 뒤로는 배울 기회가 없어져서 시지부지 하다가 기타와 멀어졌다. 3년 전에 다시 통기타를 잡았다. 계기는 ‘흘러간 노래’의 멜로디 연주가 하고 싶어서였다. 통기타 트롯 책을 샀다. 그중에서도 <돌아가는 삼각지>와 <마포종점>, <갈대의 순정>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유튜브에서 이들 노래의 멜로디 연주를 듣고 나서 정말이지 ‘환장할 정도로’ 치고 싶었다. (여담인데 나는 우리나라 대중가요 역사상 가요 딱 한 곡만 고르라면 <돌아가는 삼각지>를 고르겠다). 한동안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이 세 노래 연습에 매달렸다. 나름 전력을 다해 연습하고 연주해 보았지만 녹음된 것을 들어보니 이건 도저히 연주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무모한 짓이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웬만큼 빠른 손가락 놀림이 아니고는 (스케일이나 하이 코드에 대한 기량도 없으면서) <돌아가는 삼각지>의 전주와 후주를 맛깔나게 연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마포종점>과 <갈대의 순정>은 그보다는 나았지만 도긴개긴이었다. 차츰 흥미도 의욕도 줄어들었다. 그 대신 이것저것 유튜브를 보고 주법 공부를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져서 기타 연습을 중단해 버렸다.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기타를 꺼내서 <돌아가는 삼각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다른 곡은 몰라도 ‘이 곡 하나만은 제대로 쳐보자’는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게는 이 곡이 매력적이다. 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이 염천의 날씨, 그것도 가장 더운 오후 3시에 비지땀을 흘려가며 손가락을 놀린다. ‘따다다 따다다다 따다다다 따다다다다- 따라라란 따아아 다다다다다다다아아다 딴-다다다다다·····. 대단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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