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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일기 40 – 2025. 8. XX

퀴즈와 냉장고

by 청효당

TV를 보는 시간이 하루 평균 1시간 남짓 될까? 대체로 저녁 식사 전후한 시간인데, 그러니까 7시 전후다. <6시 내 고향>, <생방송 투데이>, <2TV 생생정보>, <고향민국>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 시간대에 걸쳐 있다. 식사가 끝나고 ‘소화가 될 만한’ 시간이 지나면 내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냥 눌러앉아 시청을 계속하는 프로그램들이 몇 있다. <한국인의 밥상>이나 <이웃집 찰스> <유 퀴즈?> 같은 것이다. <유 퀴즈?>는 재방송이 많아서 자연히 시청할 기회나 시간이 많아진다. 이번 주 방송 출연자는 요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케이 팝 데몬 헌터스>를 감독한 매기 강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였다. 빌 게이츠 같은 유명 인사의 출연이 신선하고 놀라웠는데 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의 매력 중 하나가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출연자에게 묻는 퀴즈에 있다. 상금이 100만 원인 퀴즈는 출연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시청자 또한 문제를 푸는 재미가 쏠쏠하다. 퀴즈 문제는 대부분 출연자의 성격에 맞춘 것들인데, 때로 문제의 기발함이 흥미를 끌기도 한다. 빌 게이츠에게는 (자신이 개발한) 윈도 프로그램 부팅 음의 오래된 순서를 맞추는 것이었는데 개발자 자신도 두 번을 듣고 나서 맞추었다. 귀에 익은 그 부팅 음이 새삼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우리 가족 중 퀴즈를 가장 많이 맞추는 사람은 나다. 나이를 고려하면 이것저것 잡 상식이 많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방송국 PD를 꿈꾸고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때 상식 공부를 많이 했다. 그때 시험 과목이 영어와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방송국 입사 시험(2차 면접)에 낙방하고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때 공부한 잡 상식이 이즈음의 <유퀴즈?>에서까지 ‘효력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 MBC에 <장학 퀴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이 시그널 뮤직이었다. 지금도 그 음악만 들으면 반사적으로 그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일본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퀴즈 프로그램이 아주 적다(거의 없다). 일본은 TV 채널이 많아 프로그램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유독 퀴즈 프로그램이 많은 것은 지적 호기심이 별나게 강한 이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여러 명 팀을 이루어 퀴즈 문제를 풀어나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국마다 한, 두 개는 꼭 있는 것 같다. 퀴즈로 나오는 문제의 수준이 여간 높지 않고, 그걸 풀어내는 출연자들의 수준 또한 전문가를 뺨친다. 상식 문제에는 제법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도 (언어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혀를 내두를 만큼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유 퀴즈?>는 연예인 등 유명 인사뿐만 아니라 화제성을 가진 다양한 일반인의 출연과, 진행자의 인기와 탁월한 진행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퀴즈 문제를 내는 독특한 방식(퀴즈에 정답을 맞히지 못한 출연자에게 주는 재미 난 기념품 등)에 힘입어 좋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냉장고를 보러 주말 내내 아내와 인터넷을 검색하고 대리점을 돌아다녔다. 25년 전(!)에 구입한 냉장고가 ‘드디어’ 수명을 다한 것 같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냉장실 기능은 정지되고 간신히 냉동실만 유지되던 것이 그제 밤에는 당장 무슨 사태라도 날 것처럼 심한 소음이 났다. 한밤중에 아내를 깨워 살펴보았지만 기계치인 우리 두 사람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만 되풀이해 볼 뿐 별다른 요령이 있을 리 없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냉장고 내부가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새것을 장만할 엄두를 못 내고 (그나마 냉동실 기능이 유지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차일피일해 오던 것이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소음을 없애기 위해 일단 플러그를 빼고 냉장고 안의 물건 몇 가지를 다른 냉장고로 옮겼다.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세 개(한 개는 김칫독 냉장고)다. 고장이 난 냉장고를 뺀 나머지 두 개도 다 10년은 훌쩍 넘은 것들이다. 세 식구가 사는 집에 냉장고가 세 개(김치냉장고 포함)씩이나 있어야 하는 사실에 때때로 나는 의아할 때가 있다(이래서 나는 늘 아내의 핀잔을 듣는다). 그 세 개도 모자라서 문을 열면 물건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빽빽이 들어차 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다음날 몇 군데 가전제품 대리점에 가서 냉장고를 둘러보았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냉장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능도 다양하고(제품마다 AI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디자인도 세련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붙어 있는 가격표의 숫자는 ‘입이 벌어질 만큼’ 높았다. 그중 마음에 든 제품 하나를 골라 직원과 상담을 했다. 직원은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는데 최종 가격이 나오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몇 번을 묻고 되물었다. 일시불일 경우와 할부(‘월 구독’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했다)일 경우의 가격, 1등급 에너지 효율에 적용되는 정부 지원금, 카드 할인 금액(해당 상품 구매를 위한 신규 카드를 발급받아야 함), 포인트 적립금(나중에 사용) 등등. 아내와 나는 이렇게 ‘쥐어짜서 나온 가격’만을 되뇌며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매장을 나왔다. 아내는 집에 와서 둘째 딸과 함께 컴퓨터를 켜놓고 눈여겨본 제품의 가격과 기능을 다시 확인해 보고, 자녀가 가전제품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에게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알아보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드는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보탤 만한 의견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이런 생각만을 하면서 입맛을 다실뿐이다. “얼마라고? 그냥 일시불로 사도록 해요” 하면서 턱 하니 카드를 내주는 장면이다. 40년 직장 생활을 하고 이 나이에 이르도록 이런 ‘호기도 부릴 수 없는’ 내 모습이 참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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