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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15. 2021

다시 쓰는 일기 4 – 2021. 12. XX

한 주간의 신문을 스크랩하다

 

한 주일 동안 쌓인 신문을 정리했다. 나는 종합일간지 하나와 경제지 하나를 구독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라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신문 읽기를 고수한다. 아침에 배달되어 온 신문을 펼쳐보는(특히 화장실에서) 재미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은 당연히 나 혼자다. 신문을 통해서는 사건, 사고 소식 같은 단순 정보뿐 아니라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심층 분석 기사나 기획 기사 등을 접할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도 동일한 기사를 읽을 수 있지만 어쩐지 미진하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오면서 구조화된 오랜 습성과 정보 인식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요즘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 모바일 전화기만 빨려 들어갈 듯이 들여다볼 뿐이다. 예전에 반년 정도 신문 구독을 중지한 사례가 있었는데 마치 담배를 끊고 난 후의 금단 증상 같은 병(?)을 앓았다. 금요일, 토요일 주말판을 사기 위해 일부러 편의점까지 가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동네 편의점에서도 거의 신문을 팔지 않는다. 지하철역에 있는 편의점까지 가야 한다. 그걸 보다 못한 아내의 권유로 다시 신문 구독을 재개한 것이다.    


 

모아 놓은 일주일치의 신문 중에서 눈여겨본 기사들은 스크랩을 한다. 주로 문화, 예술과 관련된 기사들이다. 전시회나 공연과 관련된 기사, 최근에 개관했거나 화제가 된 건축물과 문화적 공간, 인문 · 예술 관련 연재물, 독서 · 출판 기사와 서평, 문화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칼럼, 그리고 여행과 레저 관련 기사 등이 대상이다. 그 기사들을 오려내서 분류한 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기도 한다. 밑줄을 그은 대목은 따로 노트에 옮겨 적는다. 스크랩해 놓은 것이 일주일치만 해도 분량이 적지 않아서 일종의 요약본으로 정리를 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장소는 답사나 구경을 가고, 적어 놓은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는다. 어떤 주는 분량이 많아서 소화하느라 한 주일이 바쁠 때도 있다. 부질없는 일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중요한 소일거리다.    


  

이번 주에는 전문가들이나 독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을 통해서 드러나는  독서 경향과 주요 관심사, 그리고 그 배경에 깔린 사회적인 현상 등을 짚어보면서 독서의 중요성과 의미를 되새겨본 어느 칼럼니스트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올 한 해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사유하는 일상의 강조’ ‘지식과 정보보다 지혜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은 철학책들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신문을 보고 동네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 본 결과 역시 그와 관련된 몇몇 책들은 이미 모두 대여 중이었다. ‘오징어 게임’과 ‘한식 먹방’ 등 한류 문화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기사와, 어느 시인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형식의 산문에도 밑줄이 많이 그어졌다.      



주말에 집에 온 아들과 동네 공원을 산책했다. 회사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이런저런 대화 끝에 내가 신문에 나온 ‘올해의 책’ 이야기를 하며 독서 습관을 강조했다. 아들은 학교 문을 나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교양서적(?)은 거의 읽지 않는 것 같다(그렇게 보인다). 이런 현상이 우리 아들만 그렇겠는가. 이 시대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집에 와 있는 주말 동안에도 TV의 예능 프로를 보거나 스마트폰 삼매경이 대부분이다. 나는 어설픈 지식을 동원해서 독서의 중요성을 늘어놓았다. 눈과 귀만 열어 놓고 그냥 보여주는 대로 들려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행위만으로는 생각을 키울 수 없다. 영상과 화상이 주도하는 시대에 그런 매체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장점도 있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그에만 매몰되면 자기 발전이 없다. 화상이나 영상을 볼 때는 책을 읽는 것보다 상상력이 발동할 여지가 약하다. 그냥 눈앞에 존재하는 그림과 형상을 ‘볼’ 뿐이다. 당연히 부담이 없고 편하니 자꾸 그런 매체들만 찾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매체의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인문학적인 소양이란 결국 책을 통해 얻어야 한다. 책 속의 글자와 단어와 문장은 단순히 눈의 지각 작용으로만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분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만큼 대단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두뇌활동이다. 상상력이 무엇이냐? 창조란 상상력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판단, 미래에 대한 전망을 위해서도 독서의 힘은 필요하다. 위기와 시련이 닥쳤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 또한 독서 경험에서 나온다.



아들은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전부 옳은 건 아니’라며 항변(?)한다. TV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유명인사의 강의도 들을 수 있고 유익한 다큐멘터리 프로도 많다. 꼭 종이책을 보아야 지혜가 생기고 상상력이 개발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무조건 그런 걸 배척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균형을 맞추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한 달에, 아니 두 달에 한 권 정도라도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 특히 문화계에서 두각을 보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독서력이다. 특히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독서 행위는 그들의 성공에 큰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에 얻어지는 결실이다.

아들은 독서가 쉽지 않은 나름대로의 고충과 현실을 토로했다. 일주일 동안 긴장과 피곤에 지친 회사 생활인데 회사 밖 시간까지 긴장과 집중의 시간을 보내야 하느냐,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 게임도 하고 만화도 보고, 예능 프로도 보면서. 나는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결론 삼아 한 마디만 하고는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결국 문제는 자신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욕구가 생겨야 하는 것이고 그건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부질없다 하더라도 아빠로서는 그런 시간이 올 때까지 틈틈이 대화하여 변화를 유도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날 저녁 자리에 누워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내 주장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으며 조리가 있었는가. 내가 한 말은 다 옳은 말이었는가. 너무 일방적인 것은 아니었는가. 무엇보다 나 자신의 공부도 산만하고 얄팍한 주제에 누구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겠다는 것인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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