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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18. 2021

박수근 회고전을 보고

나는 박수근의 그림 원본을 본 적은 없다. 몇 해 전인가 달력에 실린 그의 그림 몇 점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책에 실린 복제본을 보았을 뿐이다. 양구에 그의 기념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곳까지 가서 그림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그의 그림 원본 한 점도 본 적이 없으니 미술 애호가라는 말은 못 들을 것 같다. 대신 나는 박수근을 생각하면 그에 대해 쓴 글이 떠오른다. 우선 이윤기의 어느 글이다.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박 화백의 부인이 회고한 것이다. 박수근은 눈물이 많았다고 한다. 그 말을 하면서 부인은 ‘지나고 보니 아마 그분이 오래 살지 못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지만 박수근도 궁핍과 고난에 찬 세월을 보냈다. 다감하고 섬세하고 인정 많은 그분의 성품의 어느 일면을 보여주는 듯해서 늘 그 대목이 떠오른다. 화가 박수근은 자연스럽게 작가 박완서를 떠오르게 한다. 아주 잘 알려진 대로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은 한국전쟁 중 미군 PX에서 함께 일한 박 화백과의 일화가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소설이다. 작품 속에서 화가는 옥희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박완서의 그 소설이 사람들에게 화가 박수근을 알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찾았다. 박수근 회고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덕수궁은 1월 이래 세 번째다. 이번 박수근 전시회는 유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으로 역대 최다의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라고 한다. 덕수궁관은 전시실이 1, 2층 각 2실씩 네 개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대체로 네 개의 테마로 나누어서 전시한다. 이번 박수근 전시회도 그렇다. 1 전시실은 그의 어린 시절, 화가로서의 데뷔 시절과 초기 작품들, 소설 삽화와 그가 수집한 조선 풍속 엽서, 밀레 화집 스크랩북 등 물건들과 잡지들이 여러 그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화가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화가의 전기(「화백 일생기」)가 눈길을 끈다. 갱지로 된 노트에 화가의 생애를 상세하게 자필로 기록한 것인데 미술잡지에 연재되었다가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화가는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하여 1965년에 타계했다.        

도마 위의 감자, 나무와 두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노상에서
삽화, 스크랩북, 밀레 화집

2 전시실은 ‘미군과 전람회’라는 제목 아래 그가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다, 아이를 업은 소녀, 초가집, 절구질하는 여인, 농악 모습, 노인과 아이들을 그린 그림들과 미군 PX 전경 사진(현재의 명동 신세계백화점)과 그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의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화가와의 인연이 소설의 바탕이 된 박완서의 소설 『나목』 단행본과 사진도 볼 수 있다. 화가의 자필 이력서가 있다.  공립 보통학교 졸업 후 미술 공부를 ‘독학’으로 했음을 명기한 것이 눈에 띈다.

절구질하는 여인, 길가에서(아기 업은 소녀)
쉬고 있는 여인, 집, 앉아 있는 여인
박완서 작가 사진, 미군 PX 작업 사진, 명동

2층의 3 전시실의 테마는 ‘창신동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 온 화가는 창신동에 정착하여 10년을 살았다. 이 기간이 화가로서 전성기를 누린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창신동을 그린 것이 많다. 창신동 판잣집, 기와집, 동네 풍경,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그린 것들이다. 이 전시실에는 1950∼60년대 서울 풍경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들도 여럿 전시되어 있다. 지난 6월에 류가헌에서 이 분의 사진전을 본 적이 있는 내게는 새삼 반가웠다. 그의 사진에는 당시의 서울 풍경과 서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더없는 그리움과 애틋함을 갖게 한다. 3 전시실 출구 가까이에 있는 사진과 설치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루 끝에 나란히 앉은 세 자녀들의 사진과 대형 설치물로 재현해 놓은 창신동 집 마루가 그것이다. 마루 뒤로 그의 작품들이 빼곡하다. 딸을 안고 있는 그의 부인과 화가의 모습이 평화롭다.  

1950-60년대 서울 풍경 사진(한영수)
모자, 판잣집
노상, 공기놀이하는 소녀들
창신동 집 풍경과 자녀들

4 전시실은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의 지인들과의 교류, 화가와 작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상, 회고담 등을 작품들과 함께 전시했다. 시인 김후란 씨의 시화전을 축하하여 선물한 그림, 미술사학자 최순우에게 보낸 연하장, 박수근 유작전 안내 팸플릿 등이 보인다. 질감이 거칠거칠하고 뿌옇고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그의 많은 작품들과 달리 비교적 색채가 풍부하고 형상이 뚜렷한 그림들이 많았다. 그의 그림에는 나무와 여성이 많다. 나무는 하나같이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들이다. 여인들은 대부분 일하는 여인들이다. 절구질을 하고, 맷돌질을 하고, 빨래하고 물건을 파는 여인들이다. 또 소녀들과 노파들이 많다. 소녀들은 아이를 업고 있고 노인들은 길가에 앉아 쉬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의 그림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시를 읊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수근의 그림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요인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소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의 생활 감정을 담아 그린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춘일, 빨래터
유작전 팸플릿, 연하장


박완서의 소설 『나목』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윤식(작고)  「박수근과 박완서 -나목에 이른 -이라는 에세이가 있다. 전쟁으로 가족이 겪은 비극적인 상흔에 시달리는 주인공 경아가 침팬지 태엽인형을 매개로 화가 옥희도와 서로 연민과 유대감을 느끼면서 허무감을 극복하게 되고, 이후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전에는 ‘고목으로 보였던 박수근의 그림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내면으로 꿈을 싱싱하게 간직한 나목으로 보이는 과정을 통해 문학과 미술의 연관을 분석한 글인데 여기에 흥미를 끄는 대목이 있다.

‘(박수근 화가의) 절구통이나 툇마루의 화강석 섬돌의 감촉’ 같은 독자적인 기법이 그의 생리적 조건(눈 질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는 화가 이대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 (전략)그는 눈의 질환을 걱정하며 정상적인 한 눈을 가리고 볼 때면 마치 초종이(파라핀 지)를 통해 보는 것같이 어렴풋이 희게 보인다고 늘 말했다. 그런 그의 생리적 조건이 그의 표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나는 보고 있었고, 윤곽선의 필요를 느껴 그 굳센 힘의 상감한 듯한 선이 생기게 된 것 같다.(이하 생략)- 이어 김윤식은 ‘그런 면에서 그는 그가 본 대로 물체를 그린 것이며 대리석 같은 질감을 낸 마티에르의 수법은 생리적 측면에서 고안한 것이기에 운명적이다’이라고 했다. 박수근과 『나목』의 박완서 두 사람 다 운명적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덕수궁미술관에 세 번째 오면서 드는 생각이다. 전시실이 네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니 늘 그에 맞춰 테마를 구성하는데 꼭 그렇게 전시실 수에 따라 4가지로 나눌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공간에 비해 전시 작품 수가 많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많은 작품을 보고 나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로감이 느껴졌다. 가능하면 많은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주려 하는데 그게 왜 불만이냐고 주체 측이 생각할지 모르겠다. 미술 문외한의 공연한 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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