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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14. 2021

용산2가동 골목길 산책

『서울, 골목길 풍경』에 소개된 여덟 동네 중 네 번째로 선택한 곳은 용산2가동 골목길이다. 용산2가동은

‘후암동과 해방촌 사이의 남산 기슭에 있는 동네’로 위로는 소월로가 지나고 아래로는 신흥로와 두텁바위로가 지난다. 내게 용산2가동을 떠올릴 만한 각별한 연고는 없다. 굳이 연결 고리를 찾자면 예전에 대학입시 준비할 때, 또 퇴직한 후 한동안 소일 삼아 다녔던 남산도서관 열람실 창을 통해 익숙하게 보아온 동네이고, 10여 년 전 일본어 번역 스터디 모임에 참가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 ‘수유너머’에 가느라 신흥시장 앞길을 오간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해방촌이란 동네 이름이 주는 특별한 정감 같은 것도 작용한 것 같다.  



소월로 아래 동네는 가장 서쪽에 위치한 후암동과, 동쪽으로 용산2가동 · 해방촌 그리고 이태원-한남동으로 나누어진다. 용산2가동은 신흥로20길 · 두텁바위로60길 - 옛 새싹길로 추정 -을 위쪽으로, 두텁바위로가 왼쪽을, 신흥로는 아래쪽과 오른쪽 윤곽을 각각 형성하며 골격을 이루고 있다.

아래쪽 신흥로에서 보면 큰길인 신흥로22길, 신흥로20길 · 두텁바위로60길 · 소월로가 층을 이루며 정점인 남산을 향해 오르는 경사지에 넓게 펼쳐져 있는 동네다.

『서울, 골목길 풍경』에는 용산2가동의 오래된 골목길을 세 지역으로 나누고 있다. 첫 번째는 신흥로38길 - 옛 미리내 1길로 추정 -과 두텁바위로 사이로, 두텁바위로40길 · 58길 등이 주요길이다. 두 번째는 신흥로36(108계단길)/신흥로22가길과 신흥동 사이의 동네로, 신흥로26길 · 30길 · 32길 · 34길 · 36길 등이 핵심 길들이다. 마지막으로 신흥로와 소월로20길 사이의 신흥로15길 · 11나길 등 옛 신흥로 7 · 8 · 9길로 추정되는 골목길들이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다. 오후부터 눈이 내린다는 예보도 있었다. 한동안 이어지던 강추위는 다소 누그러진 듯하다. 소월로 보성여중·고 입구 정거장에서 버스를 내려 해방촌5거리로 내려간다. 5거리에 위치한 용산2가동 주민센터에 들러 동네 지도를 구하려 했지만 마땅한 것이 없어 그 대신 입구 게시판에 부착되어 있는 동네 지도를 찍었다. 해방촌5거리는 소월로20길, 신흥로20길, 신흥로 등으로 갈라진다. 『서울, 골목길 풍경』에 나와 있는 골목길 세 지역 중 신흥로와 소월로20길 사이에 위치한 골목길들을 먼저 둘러보았다. 이곳은 용산2가동의 가장 오른쪽 지역으로 이곳에서 시작하여 후암동 종점을 거쳐 두텁바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코스 같아서였다. 후암동 종점으로 향하는 신흥로 큰길에서 왼쪽으로 난 가짓길과 신흥로23길 · 25길이 이 지역을 구성하는 골목길인데 연립주택과 상가 건물들이 중심이다. 군데군데 공사 중인 곳도 있다. 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제법 경사가 있는 돌계단이 길게 조성된 골목길들이다. 폭도 그렇게 좁지는 않고 반듯하게 다듬어진 계단들이다. 임석재 교수는 이 지역을 ‘골목길 특유의 정취가 두드러진 곳’이라고 했는데 왠지 내게는 그리 인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동안 동네가 변했거나 아니면 내가 엉뚱한 골목을 더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와서 주변을 둘러보아야겠다.



후암동 종점에 이르는 신흥로를 따라가다 보면 ‘해방타워’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 표지석과 5충 건물이 있다. 2019년 12월 1일에 세워진 이 표지석에는 이곳이 숭실학교의 옛터라고 쓰여 있다. 건물 앞 인도에는 숭실학교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내게 이 건물은 낯설지 않다. 지금 이 건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이곳은 외국인학교였다. 이 학교 시설 일부를 ‘수유 너머’가 강의실이나 도서실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방 타워를 지나면 오른쪽을 파고드는 골목길이 잇달아 나온다. 앞에서 소개한 두 번째 골목길 구역인데 신흥로30길 · 32길 · 34길, 그리고 26길이 이에 해당한다. 해방타워 건물 뒷길로 내려가도 이 골목길들과 만날 수 있다. 내 생각엔 이 길들이 이 동네의 핵심 골목길들 같다. 골목길 풍경은 다양하다. 집들도 다양하고 길도 다양하다. 주저앉을 듯 낡은 집들이 있는가 하면 반듯한 연립주택들도 있다. 손질하지 않은 자연석 그대로의 계단도 있고 잘 다듬어진 계단도 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도 있다. 골목은 급격한 경사를 막기 위해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지고 꺾이며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폭도 다양하고 높이도 다양하다. 임석재 교수의 표현대로 ‘지루해질 만하면 갈라지고 급하다 싶으면 휘어간다.’     

후암동 종점 로터리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면 108계단이 나온다. 신흥로36길로 표시되는 계단이다. 길고 가파른 계단이어서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언제 설치된 것인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같다. 108개의 계단은 4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아래쪽인 1층에서 꼭대기인 4층까지 오르는  2분쯤 걸린다.  계단은 일제강점 말기에 건설된 것으로 경성호국신사의 진입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 경성호국신사 계단(일명 108계단)’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계단길은 오른쪽으로 신흥로26길을 따라 32 · 34 등의 골목길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신흥로22가길을 따라 해방촌5거리와 만난다.    

마지막으로  골목길들이 모여 있는 두텁바위길을 향한다. ‘두텁바위라는 이름은  마을에 ‘둥글고  바위 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 후암厚岩이다. 후암동 종점 로터리에서 두텁바위로를 따라 가다보면 영주교회가 보이는데  옆길인 두텁바위40( 새싹1길로 추정) 오른다. 남산이 가까워지면서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진다. 아래쪽은 경사는 심하지만 비교적 넓은 길들이라 길가에는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곳곳에 자동차 안전 주차 요령을 알리는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눈이라도 내린 날엔 운전하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을  같다. 두텁바위40길을 따라 계속 오른다. 가파른 돌계단길이 각도를 꺾어 교차하며 이어진다. 숨이 턱에 찬다.  가파른 길들을 매일 오르내리는 일이 만만치를 않을  같다. 하지만  골목길들은 신흥길 골목들과는 달리 대부분 계단들이  다듬어져 있고 집들도 반듯하다. 같은 골목길이라도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도중에 40길이 58길과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모두 차도인 신흥로20/두텁바위로60길로 이어진다. 40길을 따라 오르면 신흥로20길이고 58길을 따라 오르면 두텁바위로60길이다.  이름이 새싹길이었을  길은 이름이 둘로 나뉘어진다.  길에서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면 소월로다. 신흥로20길에서 다시 후암동 종점 방향으로 내려온다. 이번에는 두텁바위로58길과 38길을 거쳐 신흥로38길로 나왔다. 이곳도 규모는 작지만 신흥로36, 36가길로 형성되는 작은 골목길들이 있다.  이름이 미리내1길이 아닐까 짐작된다. 막다른 골목인  보이면서도 숨바꼭질하듯 이어지는  재미있다.  길을 나오면 108계단 앞이다. 다시 신흥로 찻길을 따라 신흥시장을 향해 걷는다.  길은 통행 차량이 많다. 특히 택시가 많이 다닌다. 마을버스도 다닌다. 2차선 길인데 사진을 찍느라 어정거리다 차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신흥시장이 보인다.

골목길이라는 게 미로처럼 얽혀 있어 실제 가보지 않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본다 하더라도 한, 두 번으로는 그 그림이 뚜렷하게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는다. 좁고 가파른 길이라 힘도 든다. 그러나 서울에 아직 이런 골목길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그런 길을 찾아 산책하는 일은 즐겁다.

『서울, 골목길 풍경』은 소중한 책이다. 그 책이 아니라면 이 넓은 서울 시내 어디에 어떤 골목길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신흥시장 골목의 한 식당에서 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소월길로 올라왔다. 길가에서 한참 동안 내가 돌아다닌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멀리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빗방울이 조금 듯는 듯하다가 그친다. 후암약수터, 남산도서관, 힐튼호텔을 거쳐 남대문시장까지 걸었다.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의 책 『서울, 골목길 풍경』을 들고 골목길을 산책했다. 이 글은 2020.1월, 네 번째 산책 후 쓴 글이다. 글이 위주가 되는 브런치 특성을 고려해서 최소한의 사진만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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