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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26. 2021

가토 도키코加藤登紀子

작년에 데뷔 55주년을 맞은 일본 가수 가토 도키코가  작년 9월부터 시작한 유튜브 영상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登紀子의「土の日ライブ」(흙의날 라이브)라는 제목인데, 매월 11일에 guest 한, 두 명을 초대하여 다양한 테마로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제목의 '土'는 흙을 뜻하는 한자 土이기도 하고 한자 十 一을 뜻하기도 한다. 매월 11일을 '흙의 날'로 정하고 '진혼과 재생'의 테마를 담은 방송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1973.9.11 칠레 사태, 1993. 9.11 미 무역센터 테러, 2011. 3.11 동일본 대지진 등 유독 11일에 발생한 대형 사건이 많았던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11일에 시작하여 이번 달에 16회를 방영했다.



음악 장르나 일본 음악의 흐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샹송 가수로 출발한 가토 도키코는 일본 최초의 싱어 송 가수로, 모리야마 료코(森山良子) 등과 함께 아마 일본 포크 1세대 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토 도키코는 1943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9세다. 도쿄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에 데뷔한 가토는, 당시 도시샤(同志社)대학 학생으로 학생운동의 지도자였던 후지모토 토시오(藤本敏夫)가 수감 중일 때 그와 옥중 결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편과 함께 도쿄 인근 치바현 가모카와(鴨川)에서 농사를 짓고 농업 체험 교실을 운영하는 등 ‘자연왕국’을 이루며 생활하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가 두 번째로 일본 근무를 시작한 때가 2011년 4월 동일본 지진이 발생한 직후였고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것이 2014년 6월이었으니 일본에 주재하는 동안 처참한 지진의 여파를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산 셈이다. 내가 그 나라 국민은 아니었지만 TV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 그 엄청난 재난 현장과 수없이 많은 안타깝고 슬픈 사연들을 접하면서  많이 울기도 했다. 당시 나는 단신으로 일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젊은 나이도 아니었던 데다 생활 자체도 숙소와 일터를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었던 탓에 나 자신의 외로움 같은 것도 그런 감정에 더해졌을 것이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노래가 가토 도키코의 노래였다. 그의 대표곡들을 모은 CD 2장을 사서 거의 매일 듣다시피 했다. 밤늦은 시각 불도 켜지 않고 벽에 기대어 이어폰을 꼽고 들었다. 그의 많은 명곡들 중 특히나 좋아해서 즐겨 듣던 노래가 몇 곡 있다. 그 곡들에는 공통적으로 가사나 멜로디에서 전해지는 삶의 쓸쓸함이랄까 외로움 같은 것이 진하게 배어 있어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좀 계면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이 든 남자가 불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벽에 기대앉아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광경을 떠올리면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 당시의 일본 상황이나 또 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것이 겹쳐져서 감상 과잉에 젖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즐겨 듣던 그의 노래 서, 너 곡을 소개해 본다.



우선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나카니시 레이(나카니시  札)가 작사하고 가토 도키코가 작곡한 것인데,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배우였던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郞)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곡이라고 한다. 이사하라 유지로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발표한 곡으로, 그의 생전 마지막 싱글 앨범곡이다. 노래 가사를 볼 때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감정을 노래에 담은 듯하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극우 정치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 도지사의 동생으로, 데뷔작은 형의 유명한 소설인 「태양의 계절」이었다. 나는 가토가 부른 것이 더 좋아서 주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여담인데, 얼마 전 우연히 TV 아사히의 대표적인 토크 프로인 <테츠코의 방(徹子의部屋)>에 이시하라 유지로가 출연한 것을 보았는데 방송을 하면서 계속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별나게 눈에 띄었다. 유지로가 43세였던 1977년에 방송된 것이니 그가 세상을 떠나기 꼭 10년 전이다. 말이 나온 김에 <테츠코의 방>에 대해 몇 마디 보탠다. 이 토크 프로그램은 배우인 사회자 구로야나기 테츠코(黑柳徹子)가 1976년 2월2일에 시작한 TV아사히의 프로인데 금년으로 46년 째 방송 중으로 방송 회수 11,000회를 돌파했다고 한다. 테츠코가 1933년생이니 지금 우리 나이로 89세가 아닌가!


https://youtu.be/TQY2TiqmxsU


두 번째 노래는 <시레도코 여정(知床旅情)>이다. 시레도코는 북해도 오호츠크해(海) 남단에 돌출한 반도(半島)이름이다. 이 노래는 쇼와(昭和)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의 국민 배우로 불렸던 모리시게 히사야(森繁彌유)가 작사, 작곡한 것으로 일본인 애창곡 조사 시 언제나 10위 안에 드는 노래이다. 모리시게가 이 노래를 만들게 된 사연이 있다. 모리시게가 출연한 <땅 끝에 사는 것>이라는 영화는 『오호츠크 노인』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한 것인데 이 영화 촬영의 로케지가 북해도 라오스였다. 모리시게는 촬영에 협조해 준 주민들에 대한 감사와 라오스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촬영 기간 틈틈이 가사와 곡을 만들었다. 라오스를 떠나는 날 아침, 주민들과 영화에 참여한 배우와 스텝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의 기타 반주로 이 노래를 합창했다고 한다. 1960년의 일이다. 몇 년 후 노래 제목을 <시레도코 여정>으로 바꾸었고, 1971년에 가토 도키코가 불러 한층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09년 97세로 작고한 모리시게는 이 노래 한 곡만으로도 그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자랑해도 될 것 같다.      


https://youtu.be/T40Tx2WS6Ag


마지막으로 <레몬>이라는 노래인데 가토 도키코의 작사, 작곡이다. 나는 특히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잔잔한 기타 반주로 읊조릴 듯 부르는 노래인데 가느다랗게 떨리는 가토 특유의 창법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이 노래는 가사를 알고 들어야 그 분위기를 한층 잘 느낄 수 있어서 가사 원문과 서투르지만 나름대로 번역한 가사를 적어본다.  

   

마당에 심은 레몬 나무가 조금 자라서

봄바람에 이끌려 하얀 꽃을 피웠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몇 번의 봄을 헤아렸나

추억만이 언제까지나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흔들리네

잊을 수 없는 그 여름날, 둘이선 걷던 지도에도 없는 숲속 오솔길

하늘에 울리는 새들의 지저귐, 재잘거리는 작은 생명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여름의 수런거림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네, 단지 그것만이 꿈같을 뿐

거리의 불빛에 방황하며 쓸쓸함에 헤매네

억수 같이 내리는 빗속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네

당신 없는 밤도 아침도 나 혼자만의 이 방에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살고 있는 나 혼자만이라는 신기함

당신 없는 오늘도 내일도 창을 열어 햇빛을 받아들이고

말 없는 바람처럼 끝없이 꿈을 찾고 있네

끝없이 꿈을 찾고 있네

초가을 레몬 나무에 작은 열매가 흔들리고 있네     

(가사가 시적이라 시원찮은 일본어 실력으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https://youtu.be/DVD71yjTstM


이 노래는 2006년에 발표한 것인데 2002년에 작고한 그의 배우자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로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대한 슬픔과 상실감이 가슴을 후비는 듯 파고든다. 츠치노히라이브 3회에선가 가모카와의 가토의 집 야외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가슴이 찡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알고 자주 듣게 된 노래 한 곡을 덧붙이면 키나쇼 키치(喜納昌吉)가 작사, 작곡한 <꽃(花하나)>이라는 노래다. 1995년에 발표한 곡이라는데 그동안 왜 주목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오키나와 민속음악風의 이 곡 또한 ‘손을 대면 묻어나올 듯’한 서글픔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이 곡은 60개국에서 불려지고 음반 3,000만장이 팔렸다고 한다.


https://youtu.be/Khydx6kMFsU


카코 도키코의 대표곡 모음집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같이 부른 가곡 <봉선화>가 실려 있어 이채롭다.   

츠치노히라이브 첫 회 방송에서 가토가 <봉선화> 노래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가토가 한국에서 부를 노래에 이 노래를 포함려고 하자 어느 신문기자가, 한국사람은 일제강점기에 불려진 이 노래가 일본인에 의해 불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지 모르는데 너무 안이한 생각 아니냐, 하고 물었을 때, 가토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부르고 싶지만 만일 불러서 당신들이 싫어한다면 바로 그만두겠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가 어떤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마음을 통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이 노래가 양국 간의 복잡한 현실을 넘어서서 한국 사람들의 가슴에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얼마 전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기 쉬운 책이 아니어서 이해가 될 듯한 대목만 읽고 아닌 것은 그냥 넘어가며 읽었다. 80개의 단상으로 구성된 책인데 그 중 ‘부재하는 이’라는 글에 실린 몇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며,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부재의 담론은 여자가 담당해 왔다. ....부재에 형태를 주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은 여자이다...”     

노래 몇 곡 이야기하면서 너무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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